인호는 ‘하느님 은총’ 표지
세례 견진 성품때 받은 인호는 결코 소멸되지 않은 영적 표지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원죄(原罪)와 본죄(本罪)를 용서받고 새롭게 태어나 하느님의 자녀로서 특혜를 누린다고 믿는다. 『자녀가 되면 또한 상속자도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을 받을 사람입니다』(로마 8, 15. 17).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 나아가 「상속자」가 된 신자들은 이미 지상에서 천상적인 은총의 상속을 풍요롭게 누린다. 그 표지인 인호(印號)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상한 일들
보름쯤 전에 젊은 세대와 신앙얘기를 나누다가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자주 들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굿판을 구경하는데 무당이 재수 없다고 자신들을 쫓아내더라는 것이었다. 『여기 예수쟁이가 있어. 신이 내려오다 돌아갔어. 너희들 땜에 일이 안돼. 썩 돌아가』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겪은 일을 들려준 것이었다. 이런 얘기는 신앙인들 사이에서 수없이 증언되어왔다. 그뿐이 아니다. 점쟁이가 「예수 믿는다」는 사실을 쪽집게처럼 알아 맞추고, 세례를 받고 교회를 떠난 이들에게 되는 일이 없더라는 얘기, 세례 받은 사람들은 신앙을 잃어도 죽기 전에 다시 교회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 상례라는 얘기 등등, 신앙의 눈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화들이 곧잘 증거된다.
필자는 신흥영성운동(뉴에이지)의 실태 조사 과정에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신흥영성운동에 빠진 사람들 가운데에서 유독 가톨릭 신자였던 사람들에게 정서장애와 영적 부작용이 자주 일어나더라는 사실이었다.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영적 프로그램들(수련법, 수행법, 명상법, 예식, 의식 등)이 이상하게도 본래 가톨릭 신자였던 사람들에게는 심신의 부조화, 정신질환, 부마현상 등을 유발시키는 일이 빈번했다. 가톨릭 신앙 밖에서 평화와 행복을 찾아 헤매다가 신흥영성(뉴에이지) 상품의 덫에 걸려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큰 불안과 불행, 그리고 더 심한 갈증과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현장에서 피해자들을 만나보지 않고서는 아무도 짐작 못할 일이다.
이런 「이상한 일들」은 우리에게 「인호」와 「견책」이라는 하느님의 기묘한 은총을 떠올리게 해준다.
인호(印號)
하느님께서는 인호를 통해 우리를 돌보신다. 인호는 유효하게 세례.견진.성품성사를 받은 신자들에게 새겨지는 소멸되지 않는 영적인 표지이다. 이에 대해 1992년에 발간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세례성사, 견진성사와 성품성사는 성사의 은총뿐 아니라 성사의 인장(印章), 즉 「인호」를 새겨준다. 이 인호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며, 각기 다른 신분과 역할에 따라 교회의 지체를 이룬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통합은 결코 소멸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안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이 통합은 은총을 받기 위한 여건이고, 예수님의 보호에 대한 약속과 보증이며, 하느님 예배와 교회 봉사의 소명이다. 그러므로 이 성사들은 결코 반복해서 받을 수 없다』(1121항)
이 얼마나 기막힌 특혜인가. 세례(견진. 성품성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인호(character dominicus)가 새겨져 예수님의 보호에 대한 약속과 보증으로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표지가 되어준다고 하니, 이 얼마나 감사로운 선물인가.
우리가 인호의 효능을 올바로 알려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영적 안목을 빌릴 필요가 있다. 그가 정립하여 나중에 피렌체 공의회(1439)에서 수용되었고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및 제2차 바티칸 공의회(교회헌장 11항)에서 재확인된 스콜라 신학적 관점은 인호의 효능을 네 가지로 말한다.
첫째로 인호는 구별적 표지(signum distinctivum)로서 작용한다. 세례성사의 인호로 그리스도교 신자와 비그리스도교인들과의 구별이 생기고, 성품성사의 인호로 인해 교회 내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와의 구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둘째로 인호는 설비적 표지(signum dispositivum)로서 작용한다. 이 인호로 말미암아 성사의 고유한 작용인 은총이 주어질 수 있는 바탕, 곧 여러 성사들의 은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마련된다는 것이다(2고린 1, 21~22 참조).
셋째로 인호는 의무적 표지(signum obligativum)로서 작용한다. 즉 인호는 하느님께 대한 봉사를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상기시켜주는 표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넷째로 동형적 표지(signum configurati vum)로서 작용한다. 즉 인호는 우리가 점점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인호는 우리에게 구별, 은총의 그릇, 책임감, 그리고 수덕의 지표가 되어 그리스도인의 삶을 동반하면서 보호해 준다. 바로 이것이 앞에서 예로든 「이상한 일들」의 보이지 않는 까닭을 설명해주는 가톨릭 신앙의 현실인 것이다.
인호에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몸에 한번 그으신 구원의 「십자가 표시」는 영원히 유효하다는 하느님의 미쁘심 곧 성실하심이 반영되어 있다. 인간의 배반과 타락보다 더 강한 것이 취소할 줄 모르는 하느님 자비인 것이다. 교회가 (유아)세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견책이 곧 사랑이다
「인호」를 받은 사람들에게 심심치 않게 주어지는 것이 하느님의 「견책」이다. 견책은 사랑의 표현이다.
성서는 말한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견책하신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당신의 자녀로 여기고 하는 것이니 잘 참아 내십시오. … 여러분이 이런 견책을 받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서자이지 참 아들이 아닙니다. …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익을 주며 우리를 당신처럼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견책하는 것입니다. 무슨 견책이든지 그 당장에는 즐겁기 보다는 오히려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책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은 마침내 평화의 열매를 맺어 올바르게 살아가게 됩니다』(히브 12, 7~11).
인호(印號)를 받고서 한 눈 파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는 견책(譴責)을 주신다. 다시 당신 품으로 돌아오라는 강력한 사인(sign)이 견책인 것이다. 이 얼마나 고마운 사랑의 매인가. 천상적 「거룩함」과 「평화」에로 이끌어 주는 매를 맞을 수 있다는 것, 이는 세례를 받은 사람만의 특권이다.
– 가톨릭교회의 보고(寶庫)-세례성사(3) : 차동엽 신부님
– 가톨릭신문 ‘이것이 가톨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