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7년 7월 11일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파티마를 방문했다.) 월요일에 베니스에서 온 여러 사제들과 함께 코임브라(Coimbra)의 가르멜수녀원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미사를 드리고 난 후에 파티마 세 목격자들 중 유일한 생존자인 루치아 도스 산토스(Lucia dos Santos) 수녀님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졌습니다. 수녀님은 나이가 많이 들었어도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는데 아주 건강해 보였습니다(1907년생). 그러나 비오 9세처럼 “나는 건강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병상에 눕힐 수는 없다” 라는 식의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녀님의 유쾌한 언행, 재빠른 센스, 열성적 관심을 오늘날 교회가 당면해 있는 문제들에 대한 그녀의 영적인 젊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나는 실지 어학에 대한 지식도 없이 브라질에서 몇 주간을 보냈는데, 포르투갈 말은 조금밖에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수녀님은 그리스도 신자들, 특히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조건없이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을 강조했는데, 그들이 정신적 지주로서 성화되어야함을 대단한 열성과 신념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완전해지거나 아니면 오로지 무(無)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루치아 수녀님은 파티마의 발현에 관한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수녀님에게 저 유명한 “파티마의 춤추는 태양” 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1917년 10월 13일, 7만 명의 군중들은 10여분 동안 태양이 여러 가지 색깔로 변하더니 빠른 속도로 세 번 회전한 다음 지구를 향하여 세차게 떨어지며 돌풍처럼 내려오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루치아와 그의 두 사촌들은 그 시간에 처음에는 성가정을, 다음에는 슬픔에 찬 동정 마리아를, 마지막에는 가르멜 산의 성모를 목격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혹자는 추기경들이 사적 계시에 관심이 있는지, 이 모든 것이 복음에 내포되어 있는지 그리고 사적 계시들도 신앙조항이 되는지 물어볼 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고 복음에 “믿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따르게 될 것인데” (마르코 16,17) 라는 말씀을 따르는 신념이 거기에 내포되어 있음을 알게됩니다.
현대에는 시대의 표징들을 적응시키려는 것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표징을 ‘일으키는’ 즉 실제로 표징에 대한 징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1917년 10월 13일 비신자들과 반 교도권적인 자들까지도 목격자들을 지겹게하게 될 그 표징을 적용시켜 공적으로 허용될 것이며 아울러 그 표징 자체를 지지하여 이러한 표징이 내포하고 있는 요소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리라고 예측하였습니다.

그 요소들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 보상하고 더 이상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드려서는 안됩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통교의 수단입니다. 그러나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출판물들은 쉴새없이 기도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사람의 심상(心像)에서 기도를 완전히 없애버릴려고 합니다. 이것은 기도의 파멸이 될 것이며 이른바 “…교회 안에서까지 도리에 맞는 선택이 아니라 배신과 전적인 신앙의 상실인 세속적인 현실에 이르는 배타적인 범행을 발견하게 된다” 라고 한 칼 라너(Karl Rahner)의 말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시리아 장군 나아만은 요르단 강에서 목욕하는 것을 경멸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나아만처럼 “나는 위대한 신학자이고 성서와 전례에 정통한 성숙한 크리스챤인데 나에게 로사리오 기도에 관해 얘기를 하다니!” 라고 합니다. 그러나 로사리오의 신비도 성서이고 주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영혼을 양육하는 기도와 하나되는 성서입니다. 순전히 연구에만 치중하는 성서연구는 교만을 자라게 함으로써 성서의 가치가 비게 됩니다. 때문에 성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자들 중에는 신앙을 잃어버리는 예가 허다합니다.
지옥을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도 지옥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파티마에서 이러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 나의 예수여,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지옥불에서 구하소서. 모든 영혼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하시되, 특히 당신의 자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영혼들을 인도하여 주소서.”
“사람이 온 세상을 전부 얻는다 할지라도 자기 목숨을 잃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마태1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