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9월 23일, 그러니까 오상을 받은 지 채 3일이 넘지 않은 날, 영적 딸 가운데 한 사람의 절박한 물음에 답해 쓴 그의 편지를 줄이지 않고 여기에 소개한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을 이끌어 주시기를 빕니다! 그분의 넘치는 사랑이 당신의 마음을 채우시기 빕니다! 당신의 물음에 조목조목 대답해 드릴 수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나는 사흘 전부터 아픕니다. 당신에게 편지하기 위해 겨우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나의 짧은글을 용서하기 바랍니다.
당신의 영적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하지만 당신이 자신 없어 하는 묵상에 관한 한 나는 당신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기도에 관한 거룩한 은혜는, 내 사랑하는 딸이여, 하느님의 손에 달린 것이기에 당신이 마음을 비우면 비울수록, 말하자면 감성과 모든 육욕에서 멀리 떠나 있을수록, 그분께서는 더 많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마음으로 묵상을 익히는 데 인내로써 최선을 다하여, 뛰는 다리 또는 더 좋게는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질 때까지 조금씩 정진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유산의 배당분으로 생각하시는 당신의 영혼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기에 순종 안에서 살도록 하십시오. 당분간 당신은 허물도 제대로 못 벗은 작은 꿀벌이라고 생각하고, 큰 벌이 되어 좋은 꿀을 만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하느님과 사람들을 큰 사랑으로 겸손하게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완전한 겸손으로 그분 앞에 선 사람에게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훌륭한 묵상의 경지에 이르고 싶은 당신의 소원이 늘 이루어지지만은 않는 참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마 내 말이 맞을 것입니다.
당신은 불안과 걱정이 뒤섞인 들끓는 마음으로 묵상을 시작하여, 시원하게 당신을 위안해 줄 무슨 줄거리가 없을까하고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 때문에 당신은 찾는 것을 찾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마음과 정신 모두 다른 곳에 가 있기에, 찾는 진실에는 다가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의 딸이여, 성급하게 열병에 걸린 듯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다고 골백번 시도하는 어떤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사람은 죽어도 그분을 알 수 없습니다!
괜스레 이런 걱정 때문에 마음만 지치고 생각이 흐려져서 당신은 무엇을 묵상하는지 그 요점도 종잡을 수 없습니다. 그결과, 냉담하고 자기비하하는 기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폐단을 없애는 치료법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이 걱정을 떨쳐 버려야 합니다. 이 걱정 때문에 진정한 덕성과 진정한 내적 생활은 무서운 함정에 빠지기 일쑤입니다. 영혼을 데운다는 구실로 오히려 식는 결과가 되면, 그 함정에 더 빨리 다가서게 됩니다.
그러니 나의 딸이여, 내가 구두로 말했던 것처럼, 특히 기도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기도의 은총과 기도할 때의 기쁨은 이 세상의 샘물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샘물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크나큰 조심성으로, 그러나 언제나 평화와 겸손의 마음으로, 그 샘물을 준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아무리 애쓴다고 해도 그것을 아래로 가져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하늘로 활짝 열어, 위에서 오는 하늘의 이슬을 기다리십시오! 이러한 묵상을, 나의 딸이여, 당신은 기도 안에 넣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그분께 영광과, 또 그분께 빚진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으시더라도, 또한 우리가 말씀을 드리지 않더라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발 아래 몸을 던져 명령을 고대하는 가련한 피조물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얼마나 많은 신하들이 임금 앞에 뻔질나게 나옵니까? 그들은 꼭 임금과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이 아니라, 단지 거기에 나와서 충실한 신하로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면 됩니다. 그분의 종이라는 것을 알아, 현존하시는 하느님께 우리를 보여 드리는 이러한 방식은 거룩하고 기특하고 순수하며 고도로 완전한 것입니다.
웃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나는 매우 진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 때 하느님의 현존을 찾는 두 번째 이유는, 그분께서 주시는 영감과 내적 조명 안에서 그분과 이야기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보통 이것은 대단히 평온하게 이루어지는데, 그토록 위대하신 분과 이야기한다는 것은 특별한 은총입니다. 황송하게도 그분께서 우리 영혼을 기쁨으로 채우시며 값지고 놀라운 향기로 뒤흔들어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자, 내 사랑하는 딸이여, 당신의 기도에서 이런저런 은혜는 꼭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님과 이야기할 수 있거든 그렇게 하시고, 그분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십시오. 당신이 너무 피곤하여 그분과 이야기 할 수가 없더라도 용기를 잃지는 마십시오. 궁전의 그 신하들처럼 그분을 올바로 찾아뵙도록 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당신이 찾아온 것과 당신의 침묵을 평가하실 것이며, 어떨 때에는 당신의 손을 잡으시고 이야기하시며, 당신과 함께 그분께서 기도하시는 정원의 길을 수도 없이 거닐며 당신을 그지없이 기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정녕 그럴리는 없겠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자상하신 아버지께서 당신을 영원히 비틀거리게 놓아 두시지는 않으십니다. 여기에는 당신도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따를 의무가 있고, 그분의 현존이 우리를 보살펴 주심은 우리의 무상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분께 무슨 말씀을 드릴까?’하고 당황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현존을 당신이 감당해 낸다면, 당신은 내키지 않더라도 다분히 필요한, 아마 더 필요한 의무를 이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할 때 당신이 하느님 대전에 있으면 바로 진실의 광명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가능하거든 그분과 말씀을 나누십시오. 그것이 안 되거든, 수수하게 그냥 보기만 하고 걱정 따위는 하지 마십시오.
여행을 생각하는 모양인데, 다른 사람들, 즉 당신 식솔들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뒤탈도 없을것입니다. 당신을 위한 기도가 딸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느님을 극도로 아프게 해 가며 내가 희생을 치러 얻은 당신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분을 사랑하여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충심으로 당신에게 축복을 보내며.
– ‘비오신부의 삶과 영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