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바람 부는 12월의 어느 날 벌써 어두워진 저녁이다. 죽은 도시의 거리같이 어두운 나자렛의 거리에는 아직 잎이 달려 있는 나무에서 떨어져서 획획 소리를 내는 바람에 불려 소리를 내는 나뭇잎들 말고는 다른 소리가 없다.
그런데 반대로 나자렛의 거리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 곧바로 자기 집을 향하여 가고 있다. 충충한 옷을 입은 어두운 큰 그림자가 별이 없는 밤의 어두움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다. 마른 낙엽이 쌓인 위에 놓여 지는 그의 발걸음은 겨우 들릴까 말까 한다. 낙엽들은 공중에서 바람에 불려 빙글빙글 돌다가 땅에 떨어져 있지만 또 다른 곳으로 불려 갈 채비를 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클레오파의 마리아의 집 앞에 이르신다. 예수께서는 정원으로 들어가서 부엌문을 두드려야 하나 그렇지 않고 그대로 계속 가야 하나 잠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계시다.…그러나 곧 멈추지 않고 길을 계속하신다. 이제는 당신 집이 있는 골목에 오셨다. 집이 기대 서 있는 비탈 위에 있는 올리브나무들이 심하게 움직이는 것이 벌써 보인다. 그 나무들이 캄캄한 하늘에 꺼멓게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예수께서는 걸음을 재촉하신다. 문에 이르셔서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신다. 그렇게도 작은 이 집에서 일어나는 것은 듣기가 아주 쉽다! 문틀에 귀를 대기만 하면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 사이에는 문의 나무 몇 센티미터밖에는 없게 된다.…그런데도 아무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늦었구나” 하고 한숨을 쉬시며 말씀하신다. “새벽을 기다려서 문을 두드려야지.”
그러나 문앞을 떠나려고 하시는 순간 베틀의 율동적인 소리가 들려온다.예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어머니가 깨어 계시며 옷감을 짜고 계시구나. 틀림없이 어머니셔…분명히 어머니의 장단이다.” 예수의 얼굴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예수께서 미소 짓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것은 처음에는 서글프다가 지금은 명랑해진 그분의 목소리에 미소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문을 두드리신다. 잠간 동안 소리가 멎더니, 이윽고 의자를 미는 소리가 나고, 그 다음께는 “누구세요?”하고 묻는 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저예요!”
“내 아들!” 즐거운 기쁨의 외침, 낮은 음역(音域)의 외침이기는 하지만 외침은 외침이다. 빗장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는 … 문이 열리면서 캄캄한 밤에 금빛의 찢어진 부분이 나타나게 한다. 성모님은 거기 문지방에서 예수의 품에 안기신다. 마치 예수님은 어머니를 받는데 일분도 기다릴 수가 없고, 또 성모님은 그 가슴에 뛰어드는 것을 일분이라도 기다리실 수 없는 것처럼.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입맞춤과 “어머니 -아들”하는 다정한말들 … 그런 다음 두 분은 들어가시고 문은 조용히 다시 닫힌다. 성모님이 가만히 설명하신다.”모두 자고 있는데, 나는 깨어 있었다.…야고보와 요한이 돌아와서 네가 뒤따라온다고 말한 때부터 나는 항상 늦은 시간까지 너를 기다렸다. 예수야, 춥지? 그래, 몸이 얼었구나. 이리 오너라. 나는 화덕에 그대로 불을 피워 놓았다. 나무 한 단을 더 넣겠다. 몸을 녹여라.” 그러면서 여전히 어린 예수인 것처럼 손을 잡고 인도하신다.… 불을 다시 활활 타게 한 화덕에서는 불꽃이 탁탁 소리를 내며 신나게 빛나고 있다. 성모님은 손을 녹이려고 불꽃 쪽으로 내밀고 계신 예수를 들여다보신다. “무척 야위었구나! 우리가 헤어질 때는 네가 이렇지 않았었는데! 아들아, 너는 점점 더 야위고 얼굴이 핼쑥해졌다. 전에는 네가 젖빛깔과 장미빛깔이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오래 된 상아로 된 것 같구나. 아들아, 무슨 일이 또 있었느냐? 역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 … 그리고 또 다른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기 어머니와 같이 있으니까 행복합니다. 그리고 곧 좋아질 겁니다. 어머니, 올해에는 등불 명절을 여기서 지냅니다! 저는 여기 어머니 곁에서 완전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만족하십니까?”
“그래. 그렇지만 얘야, 네게는 완전한 나이가 아직 멀었다.…너는 젊고, 또 내게는 네가 언제나 내 어린 것이다. 자, 양젖이 따뜻해졌다. 여기서 마시겠니, 그렇지 않으면 저기 가서 마시겠니?”
“저기 가서요. 제가 이제는 몸이 녹았습니다. 어머니가 베틀을 다시 덮으시는 동안 이걸 마시겠습니다.”
두 분은 작은 방으로 돌아오시고, 예수께서는 식탁 옆에 있는 걸상에 앉으셔서 양젖을 드신다. 성모님은 아들을 들여다보시며 미소 지으신다. 성모님은 예수의 배낭을 집어서 탁자께 올려놓으실 때 미소 지으신다. 성모님이 하도 웃으시는 바람에 예수께서 물으신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셔요?”
“네가 마침 우리가 베들레헴으로 떠난 그날을 기념하는 날에 왔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그때에도 배낭들과 뚜껑이 열린 옷이, 특히 배내옷과 기저귀가 가득 찬 제들이 있었다.…나는 요셉에게 그때 날지도 모르는 갓난아기의 옷이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유다의 베들레헴에서 나기로 되어 있는 아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요셉이 그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는 그 배내옷과 기저귀들을 밑에 감추었었다.…요셉은 하느님의 아들의 탄생이 그 자신을 위해서도 그의 어머니를 위해서도 분만과 출생의 일반적인 걱정거리를 당하게 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다. 요셉은 그것을 알지 못했었고, 그래서 그런 상태에 있는 나를 데리고 나자렛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것을 무서워했었다.
나는 거기서 어머니가 되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네가 네 탄생일에, 구속의 날에 이르렀다는 기쁨으로 내 속에서 너무나 기뻐하고 있었다. 따라서 내가 잘못 생각할 수가 없었다. 천사들은 내 하느님인 너를 가리고 있는 여인의 주위를 돌고 있었다.…그것은 고상한 대천사도 아니었고, 지난 여러 달 동안 그랬던 것처럼 나를 지키는 수호천사도 아니었다. 이제는 하느님의 하늘에 내 작은 하늘, 즉 네가 있던 내 태중으로 오는 수많은 천사의 무리들이었다.…나는 천사들이 노래하는 것을 들었고, 그들이 주고  받는 빛나는 말들을 … 사람이 되신 하느님인 너를 보고 싶어서 안절부절하는 말들을 듣고 있었다.…나는 천사들이 내 태중에 숨어 있는 아버지의 사랑인 네게 경배하러 오려고 사랑으로 잠시 천국을 떠나는 동안 주고받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그들의 노래를…그들의 열의를 배우려고 애썼다.…그러나 인간은 하늘의 것을 말할 수도 없고 차지할 수도 없다 ….”
예수께서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신다. 예수님은 앉아 계시고 성모님은 식탁옆에 서서 예수께서 얼마나 지극히 행복하신가를 생각하시며 …한 손은 우중충한 나무에 올려놓으시고, 한 손은 가슴에 대고 계시다.…그러니까 예수께서는 희고 가냘프고 작은 손을 덜 흰 긴 손으로 덮으시고 당신 손으로 그 거룩한 손을 꼭 쥐신다.…그리고 성모님이 천사들에게서 그들의 말과 그들의 노래와 그들의 열의를 배우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여기는 듯이 입을 다무시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천사들의 모든 말과 모든 노래와 모든 열의도 만일 제가 어머니의 말과 노래와 열의를 가지지 못했더라면 이 세상에서 저를 행복하게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천사들이 제게 줄 수 없었던 것을 말씀하셨고 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그들에게서 배우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머니에게서 배웠습니다.…어머니, 이리 제 곁으로 오셔서 또 이야기 해주십시오.…그때 이야기 말고… 지금이야기요. 뭘하고 계셨습니까?”
“일하고 있었다.”
“그건 저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어머니께서 저를 위해 애쓰신다고 확신합니다. 보여 주세요 ….”
성모님의 얼굴은 베틀에 걸려 있고,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들여다보시는 천보다도 더 빨개진다.
“주홍빛 물감? 누가 어머니께 드렸습니까?”
“가리옷의 유다, 시돈의 어부들에게서 받았다나 보더라. 그 사람은 내가 네게 왕의 옷을 만들기를 원한다.…옷은 내가 네게 만들어 준다마는, 네가 왕이 되는 데에는 주홍빛 옷감이 필요치 않다.”
“유다는 노새보다도 더 고집이 셉니다.” 이것이 바쳐진 주홍빛 물감에 대한 유일한 논평이었다.…그리고 어머니께로 몸을 돌리시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머니께 드린 것으로 옷 한 벌을 만들 수 있습니까?”
“아이고! 아니다! 옷과 겉옷의 가장자리 술 장식을 만드는 데에나 쓰일 수 있을 거다. 그 이상은 안 되고.”
“좋습니다. 어머니께서 그걸 왜 좁은 띠로 만드시는지를 알겠습니다. 그러면 … 그 생각이 제 마음에 듭니다. 그 띠들을 저를 위해 따로 둬두세요. 그러면 제가 어느 날 그걸 가지고 아름다운 옷을 하나 만드시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닙니다. 애쓰지 마세요.”
“나는 나자렛에 있을 때에는 일을 한다 ….”
“맞습니다.…그럼 다른 사람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공부를 했지.”
“아니 그보다도 어머니께서 그들을 가르치셨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 그들은 세 명의 훌륭한 학생들이다. 너를 빼놓고는 그들보다 더 말 잘 듣고 더 주의를 기울이는 학생들을 둔 적이 없었다. 나는 또 요한을 조금 튼튼하게 하려고 애썼다. 그 사람 병이 중하다. 오래 살지 못할 거다.”
“저도 압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것이 좋은 일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사람이 그것을 바랍니다. 그 사람은 스스로 고통과 죽음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그리고 신디카는요?”
“신디카를 떠나보내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그 여자는 성덕과 초자연적인 것을 이해하는 적성(適性)이라는 면으로 제자 백 명의 가치는 있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해야 할 겁니다.”
“아들아, 네가 하는 일은 언제나 잘하는 일이다.”
“그리고 어린 아이는요?”
“그애도 배운다. 그러나 요새는 매우 침울하다.…일 년전에 있었던 불행을 기억하고 있단다.…오! 이곳은 그리 명랑하지 않았었다. 요한과 신디카는 여기서 떠날 것을 생각하고 한숨을 쉬고 있지, 어린 아이는 죽은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울고 있지 ….”
“그럼 어머니는요?”
“나는 … 너도 알다시피, 네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는 태양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세상이 너를 사랑한다 해도 태양이 여기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안심은 있을 거다.…그러나 반대로 …”
“눈물이 있군요, 불쌍한 어머니! … 요한과 신디카에 대해서 질문을 받지는 않으셨습니까?”
“대관절 누가 질문을 하겠니? 알패오의 마리아는 알고 있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 사라의 알패오는 벌써 요한을 보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호기심이 없다. 그 사람은 요한을 ‘제자’라고 부른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요?”
“알패오의 마리아를 빼놓고는 우리 집에 아무도 오지 않는다. 어쩌다가 여자가 일을 하거나 조언을 들으려고 온다. 그러나 나자렛의 남자들은 이제는 우리 집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
“요셉과 시몬까지두요?”
“… 아니 … 시몬은 기름과 밀가루와 올리브와 땔나무와 달걀 따위를 보내 준다.…마치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용서받기 위한 것처럼, 선물로 말을 하려는 것처럼.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어머니 마리아에게 주고, 여기 오지는 않는다. 게다가 누가 온다 하더라도 나밖에 보지 못할 것이다. 신디카와 요한은 누가 문을 두드리면 물러가니까 ….”
“매우 쓸쓸한 생활이군요.”
“그렇다. 그 때문에 어린 아이가 좀 괴로워한다. 그래서 이제는 마리아가 장보러 갈 때에 그애를 데리고 간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침울하지 않을 거다. 내 예수야, 네가 여기 있으니까!”
“알겠습니다.…이제는 자러 가시지요. 어머니, 제가 어렸을 때처럼 강복을 주십시오.”
“아들아, 네가 내게 강복을 다오, 내가 네 제자이니까.” 두 분은 껴안으신다.…그리고 등불을 하나 더 밝히시고 쉬시려고 나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