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작은 요한(마리아 발또르따의 애칭)아, 오늘은 할 일이 많다. 그러나 하루가 늦었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갈 수가 없다. 나는 오늘 이 일을 위하여 네게 힘을 주었다. 환상 네 번을 보여 준 것은 수난을 준비하는 마리아의 고통과 내 고통에 대하여 네가 말할 수 있게 하려고 보여준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내 어머니에게 바쳐진 날인 어제 토요일에 했어야 했지만 너를 불쌍히 여겨서 하지 않았다. 오늘은 허비한 시간을 만회하기로 한다. 내가 네게 알려준 고통 후에 마리아는 이런 고통도 당하셨다. 마리아와 함께 나도 당하였고.

내 눈은 가리옷의 유다의 마음 속을 환히 보고 있었다. 아무도 하느님의 지혜가 그 마음을 깨달을 수 없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내가 어머니께 말씀드린 것과 같이 우리에게는 그 사람이 필요하였다. 그가 배반자가 된 것은 그에게 정말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되풀이해서 말한다마는 그 사람은 우리에게 필요한 배반자였다. 그는 엉큼하고 교활하고 탐욕스럽고 음란하고 도둑질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영리하고, 다른 제자들보다 학식이 더 있어서 모든 제자에게 자기를 인정하게 할 줄을 알았다. 대담하여 어려운 일도 잘 해결하였다. 무엇보다도 그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은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내 곁에서 그가 내게 신임을 얻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발적인 애덕을 가지고 남의 일을 보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너희들이 ‘협잡꾼’이라고 부를 그런 사람의 하나였다. 이로 인하여 그는 돈주머니를 맡아 가질 수가 있었고, 여자들을 가까이 할 수가 있었다. 이것들이 그의 특권있는 임무인 셋째 일과 더불어 그가 미친듯이 좋아하는 두 가지 일이었다.
깨끗하고 겸손하고 세상 재물에서 초탈하신 내 어머니는 이 교활한 사람에 대하여 혐오감을 느끼지 않으실 수가 없었다. 나까지도 소름끼치게 하였다. 그런데 아버지와 성령과 나만이 내가 그를 가까이에 두는 것을 참아견딜 수 있기 위아여 얼마나 큰 짐을 져야 하였는지를 안다. 그러나 이것은 나중에 설명해 주겠다.
마찬가지로 나는 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적의도 모르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산산 조각을 내기 위하여 그들의 굴로 몰아넣으려고 애쓰는 교활한 여우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 피에 굶주려서 사방에 함정을 파놓고 나를 잡으려고 애썼고, 나를 고발하기 뒤한 공격수단을 얻고 나를 없애버리려고 애썼다. 3년 동안, 그들은 끊임없이 나를 계략에 빠뜨리려고 하였고, 내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적에야 비로소 그들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들을 비난하던 목소리가 영원히 사라졌던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믿었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었다. 그 목소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지금도 꽝꽝 울린다. 지금도 꽝꽝 울리고, 그들과 같은 사람들을 저주한다. 그들의 탓으로 내 어머니가 어떤 고통을 당하셨냐! 그리고 나도 그 고통을 잊지 못한다.
군중이 변하기 쉽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군중은 길들이는 사람의 손에 채찍이 들려 있거나 배고픔을 달래주는 고기 덩어리를 줄 때에는 그 손을 핥는 맹수와 같다. 그러나 길들이는 사람이 넘어져서 채찍을 쓸 수 없게 되거나 그를 만족시켜줄 음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만 하면 그에게 달려들어 산산 조각을 낸다. 처음의 열광하는 순간이 지난 후에도 단지 진리를 말하고 선량하기만 하면 군중의 미움을 사게 된다. 착함은 채찍을 없애고 착하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호산나’라고 말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박으시오’하고 외친 것이다. 스승으로서의 내 생애에는 이 두가지 외침이 가득 찼었는데, 마지막으로 외쳐진 것은 ‘십자가에 못박으시오’하는 것이었다. 호산나는 가수가 높은 음에 올라가기 위한 숨을 얻으려고 하는 호흡이었다. 마리아는 성금요일 저녁에 그의 아들에 대한 죽음을 요구하는 외침으로 된 거짓 호산나 소리를 당신 안에서 다시 들으셨고, 그로 인하여 심장이 꿰뚫리는 듯한 고통을 겪으셨다. 이것도 나는 잊지 못한다.
사도들의 인간성! 그것은 얼마나 둔한 것이었느냐! 나는 하늘로 향하여 올리려고 덩어리들을 팔에 얹고 있었는데, 그 무게가 팔을 땅쪽으로 끌어내렸다. 가리옷의 유다처럼 자기들을 이 세상 왕의 신하로 보지 않던 제자들도, 유다와 같이 기회만 있으면 옥좌에 나 대신 올라가려고 생각하지 않던 자제들도 언제나 불안스럽게 영광을 추구하고 있었다. 내 요한과 그의 형이 천상의 일에 있어서까지도 신기루와 같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영광을 바란 때도 있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가지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늘에 대한 거룩한 갈망이 아니라, 너희들의 성덕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인간적인 욕망이다. 또 이것뿐 아니라, 너희들을 온전히 드리라고 내가 말한 그분에게 사랑을 조금 드린 것 때문에 하늘 나라에서 그분의 오른쪽에 앉기를 바랄 만큼 환전상이나 고리대금업자와 같은 탐욕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안된다. 내 아들들아, 안된다. 우선 내가 마신 잔을 끝까지 다 마셔야 한다. 다 마시라고 말한 것은, 미움 대신에 준 사랑으로, 관능의 충동에 반대하는 정결로, 시련중에 용맹으로, 하느님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 마시라는 뜻이다. 그리고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 나서도 역시 ‘저희들은 무익한 종들입니다’하고 말하고, 너희들의 아버지이기도 하신 내 아버지께서 당신 인자로 당신의 나라에 자리를 주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내가 총독 관저에서 인간적인 것을 모두 벗어버린 것을 네가 본 것과 같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다만 생명이라는 하느님의 선물에 대한 존중과 우리가 이 세상에서보다 하늘에서 더 이익을 줄 수 있는 형제들에 대한 존중이라는 필요불가결한 것만 남겨두고, 어린 양의 피로써 희게 한 불멸의 옷을 너희에게 입히는 일은 하느님께 맡겨드려야 한다.

나는 네게 수난을 준비한 고통들을 보여 주었다. 다른 고통은 나중에 보여 주겠다. 비록 그것이 고통이기는 하였지만 그것을 보는 것이 네 영혼에는 휴식이 되었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잘 있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