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모든 사람에게 알맞은 두 가지 교훈이 네가 묘사한 것에서 나타난다. 첫째 교훈은 이런 것이다. 진리는 의식에 몰두하는, 그것도 건성으로 의식에만 몰두하는 사제에게 드러나지 않고 평신도에게 드러난다.
  하느님과 항상 관계를 가지고 있고 하느님에 관계되는 모든 것에 전념하고 육체를 가진 존재에 있어서는 가장 고상한 것에 바쳐진 사제는 그날 아침 성전에 바치러 온 어린아이가 어떤 아이인지를 즉시 알아차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기 위하여는 그가 살아 있는 영을 가져야 하였을 것이다. 죽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잠들어 있는 영혼을 감싸고 있는 옷만을 입고 있지 않고 말이다. 하느님의 성령은, 만일 원하기만 하면, 천둥치는 소리를 내서 아무리 폐쇄적인 영이라도 벼락과 지진과 같이 흔들어 놓으실 수 있다. 하느님의 성령은 그렇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하느님께서 그 모든 위(位)에 있어서, 또 그 행동 방식에 있어서 질서이신 것과 같이 하느님의 성령이 질서의 영이시므로, 그분의 널리 베푸심을 받기에 충분한 공로를 만나는 곳에 퍼지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 왜냐하면, 이렇게 된다면 이 은총을 받을 사람이 정말 별로 없을 것이고, 너도 그분의 빛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그 널리 베푸심을 끌어당길 만큼 충분한 ‘착한 뜻’이 있는 곳에 베푸시기도하고 말씀도 하신다.
  이 착한 뜻을 어떻게 발휘하느냐? 가능한 한 온전히 하느님에게서 오는 생활로, 믿음과 순종과 깨끗함과 사랑과 너그러움과 기도로 발휘한다. 외적인 행동으로가 아니라 기도로 발휘된다. 행동과 기도 사이에는 밤과 낮 사이보다도 더 큰 차이가 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영의 일치이니, 사람들은 여기서 새로운 힘을 얻고 점점 더 하느님의 것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오게 된다. 외적인 행동은 여러 가지 목적, 그러나 항상 이기적인 목적을 가진 어떤 습관이다. 외부적인 행동은 너희들을 있는 그대로 두든가 게다가 거짓말과 게으름의 죄를 보태 주기까지 한다.
  시므온은 이 착한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일생 동안 그는 많은 고민과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착한 뜻을 잃지 않았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의 여러 가지 역경도 그가 주께 대하여 주의 약속에 대하여 가진 믿음을 손상시키지도 흔들지도 못하였고 하느님께 점점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그의 착한 뜻을 중단시키지도 못하였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충실한 종이 -나의 고난 후 승천 때에 열린 하늘에서 빛나는 하느님의 태양을 다시 보게 될 때까지 – 당신 성령의 빛을 그에게 보내시고 그를 성전 쪽으로 인도하시어 세상에 온 빛 자체를 보게 하셨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라고 복음서는 말한다. 아아! 사람들이 성령께서 얼마나 완전한 벗이신지 알았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어떤 인도자이시고, 어떤 스승이신지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그 사랑을, 그 빛 중의 빛, 그 불의 불, 그 지능, 그 지혜를 사랑하고 그분에게 구원을 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알 필요가 있는 것을 그들이 얼마나 더 잘 배우게 되겠느냐!
  마리아야, 보아라. 내 자녀들아, 보아라. 시므온은 ‘빛을 보기’ 전에, 하느님의 약속이 채워진 것을 알기 전에 오랜 일생 동안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희망과 기도에 꾸준하는 것은 쓸데 없는 일이다’하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는 꾸준하였다. 그래서 사제와 오만하고 눈먼 최고법원의 위원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그에게 따뜻한 체온과 미소를 주는 그 어린아기의 몸에서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 구세주를 ‘보는’ 은혜를 받았다. 그는 아기인 나의 입술을 통하여 그의 정직하고 경건한 일생에 대한 첫번째 보상인 하느님의 미소를 받았다.
  둘째 교훈은 안나의 말이다. 역시 예언자인 안나도 갓난아기인 나를 메시아로 알아본다. 그런데 이것은 그가 예언의 은혜를 가졌으므로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안나가 믿음과 사랑에 이끌려 내 어머니에게 말하는 것을 너도 듣고, 너희들 내 자녀들도 들어라. 그것을 가지고 이 암흑의 때에, 이 빛의 축일에 떨고 있는 너희들의 정신을 위한 빛으로 삼아라.
  “구세주를 주신 분에게는 당신의, <당신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하여 천사를 보낼 능력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정신에서 사탄이 이룩한 사업을 없애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여라. 그분이 너희를 괴롭히고 있는 사탄들을 지금 이기실 수 없겠느냐? 그분이 저 사탄들을 쫓아버리고 당신의 그리스도의 평화를 다시 주심으로 너희 눈물을 닦아 주실 수 없겠느냐? 왜 그것을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청하지 않느냐? 너희들의 수많은 죄로 인하여 분개하신 하느님의 준엄이 그 앞에서는 미소와 더불어 사그러지는 저항할 수 없는 참된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용서가 그 결과인 도움과 너희들이 스스로 원한 피의 홍수에 잠긴 이 땅 위에 꽂히는 무지개인 축복을 가지고 오는 그런 참된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곰곰이 생각들 하여라. 아버지께서는 홍수로 사람들을 벌하신 다음 당신 자신과 족장 노아에겐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악한 마음을 품게 마련,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다시는 모든 짐승을 없애버리지 않으리라.’ 그리고 당신의 약속을 지키셨다. 그러나 너희들은 ‘이번에 우리가 살아나면, 당신이 우리를 구해 주시면, 다시는 절대로 전쟁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절대로’ 하는 말을 너희들 자신과 하느님께 얼마나 많이 하였으며, 그리고 나서 여전히 오히려 더 무서운 전쟁을 하지 않았느냐? 거짓말쟁이들아, 그리고 주를 존경하지 않고 너희들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들아, 얼마나 많이 그랬느냐 말이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신자 대중이 저항할 수 없는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부르면 또 한번 너희를 도와주실 것이다.
  하느님의 준엄을 아주 강렬하게 존속시키는 사람들의 무리와 대등하기에는 너무나 수효가 적은 너희들 모두, 그래도 너희들은 머리 위에 매달려서 시시각각으로 더 커지는 현시대의 무서운 위협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계속 충성스러워라. 너희들의 극도의 불안을 하느님 앞에 갖다놓아라. 하느님께서는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당신의 천사를 너희들에게 보내실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십자가와 일치하여 있어라. 십자가는 항상 마귀의 계략을 이겼다. 다른 방법으로는 잡을 수 없는 마음들을 사람들의 사나움과 생활의 우울함으로 절망, 즉 하느님과의 분리로 기울어지게 하려고 애쓰는 마귀의 계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