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웃에 대한 사랑의 첫번째 표시는 이웃에 대해서 나타난다. 이것이 네게는 말장난으로 생각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은 두 가지 대상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과 이웃이다. 이웃에 대한 사랑에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행해지는 사랑이 포함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면, 이미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허용되는 일에서까지도 우선 이웃의 필요를 통과시킬 만큼 거룩해야 한다. 내 자녀들아, 안심하여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전능하신 인자의 방법으로 너그러운 영혼들을 위하여 부족한 것을 보충하신다. 이 확신 때문에 나는 내 사촌언니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언니를 도와주려고 헤브론에 왔다. 그런데 인간적인 도움을 주려는 내 의도에, 하느님께서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초자연적인 도움의 선물을, 그것도 항상 그러시는 것과 같이 넘치도록 보태 주셨다.
  나는 물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간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내 거동의 올바름을 거룩하게 하시어, 엘리사벳의 태중의 아기의 성화를 행하시고, 세례자를 미리 거룩하게 한 이 성화와 더불어 나이 많고 예사롭지 않은 나이에 임신한 한 하와의 딸의 육체적인 고통을 덜어 주신다.
  대담한 믿음을 가지고 온전히 믿었으며 하느님의 뜻에 자기를 맡긴 여인인 엘리사벳은 내 안에 들어 있는 신비를 이해할 자격을 얻었었다. 성령께서는 그의 태중에서 아기가 뛰노는 것으로 엘리사벳에게 말씀하셨다. 세례자는 정맥과 살의 베일을 통하여 말씀을 예고하는 사람으로서의 첫번째 연설을 한 것이다. 그 정맥과 살은 그를 그의 거룩한 어머니와 떼어놓음과 동시에 어머니와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럴 만한 자격도 있고 또 빛이 나타나심을 보는 엘리사벳에게 나는 주님의 어머니라는 내 신분을 말하기를 거절하지 않았다. 내편에서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하느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찬사를 그분께 거절하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내 안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무에게도 그것을 말할 수가 없어서, 초목들과 꽃들과 별들과 해에, 새들의 아름다운 노래와 참을성 있는 양들과 하늘에서 내려와 내게 입맞춤을 해 주는 황금색 빛과 졸졸거리는 시내에 털어놓던 찬사를 거절하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기도를 혼자하는 것보다 더 즐겁다. 나는 온 세상이 내 운명을 알았으면 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나와 일치하여 우리 주님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해서.
  조심성으로 인하여 나는 즈가리야에게 진실을 알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일을 침범하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하느님에게 정배이고 어머니이기는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분의 종일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내게 대하여 큰 사랑을 가지셨다고 해서 감히 하느님 대신이 되고, 나를 그분 위에 올려놓는 결정을 취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엘리사벳은 그의 성덕으로 이것을 깨닫고 침묵을 지킨다. 거룩한 사람은 항상 순종하고 겸손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선물은 우리를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해야 한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많이 받으면 많이 받을수록 더 많이 주어야 한다. 우리가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그분이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더 계시고, 우리는 그분의 완전에 가까워지도록 더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개인적인 일은 뒤로 돌리고 엘리사벳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
  나는 시간이 없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위축되지는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시간의 주인이시다. 하느님께 바라면 물질적인 일에까지도 그분의 섭리를 이용한다. 이기주의는 아무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모든 것을 늦어지게 한다. 사랑은 아무것도 늦어지게 하지 않고 실현을 진척시킨다. 이것을 항상 잘 기억해 두어라.
  엘리사벳의 집은 얼마나 평화스러우냐! 만일 내가 요셉의 생각과 세상을 구속해야 하는 내 아이의 생각, 그 생각, 그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행복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벌써 십자가가 내 생활을 그늘지게 하고, 장례식의 방울소리와 같이 예언자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나는 마리아야 하고 나 자신을 불렀다. 하느님께서 내 마음에 부어 주시는 즐거움에는 언제나 고민이 섞였다. 이 고민은 내 아들이 죽을 때까지 점점 커가기만 하였다.

  마리아(마리아 발또르따)야. 그러나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희생의 운명으로 부르시면, 오! 우리의 고통으로 약한 사람들을 튼튼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늘나라를 얻게 하는 빵을 만들기 위하여 낟알이 맷돌에 갈리듯 갈리는 것이 즐겁다!
  이제 이만하면 되었다. 너는 피로하고 행복하다. 내 축복을 받으며 쉬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