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안이 보인다. 베틀 앞에 한 중년 부인이 앉아 있다. 전에는 검었는데 지금은 반백이 된 머리와 주름살은 없지만 벌써 나이에서 오는 그 근엄한 기운을 잔뜩 풍기는 얼굴을 하고 있는 그 여인을 보니 쉰에서 쉰다섯 사이이지, 그 이상은 아닐 것 같다.
  나는 그 여인이 무엇인지를 짜고 있는 것을 본다. 방은 넓은 채소밭 쪽으로 열린 문에서 들어오는 빛 때문에 아주 환하다. 그런데 정원이 기복을 이루며 초록빛 비탈까지 연장되기 때문에 하나의 자그마한 소유지로 보인다. 그 여인은 특수하게 히브리인다운 얼굴 모습을 하고 있는데, 아름답다. 눈은 검고 그윽한데, 왠지 모르지만 세례자의 눈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여왕의 눈같이 고상한 그 눈길에는 다정스러움이 가득 깃들어 있다. 마치 독수리 시선의 광채에 하늘빛 베일이 드리워진 것과도 같다. 마치 그 여인이 사라진 일을 생각하는 것처럼 부드러운 눈길에는 가벼운 애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얼굴빛은 약간 갈색을 띠었다. 약간 크고 잘 생긴 입은 엄한 표정을 띠고 있으나 냉혹한 느낌은 없다. 코는 길고 날씬하며 아래쪽이 약간 구부러져서 매부리코인데, 눈과 조화가 잘 된다. 몸이 튼튼하게 생겼으나 뚱뚱하지는 않다. 앉아 있을 때에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균형이 잡혀 있고 키가 크다.
  그 여인은 커튼이나 양탄자를 짜는 것 같다. 짙은 밤색 날실 위로 여러 가지 색깔의 북이 왔다 갔다 한다. 벌써 짜진 부분에는 완자무늬와 장미꽃 모양의 무늬가 어렴풋이 얽혀 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 무늬들에서 구리빛으로 반사되는 초록, 노랑, 빨강, 하늘빛이 엇갈리며 어울려 모자이크를 이룬다.
  여인은 매우 수수하고 짙은 옷을 입었다. 어떤 팬지의 자주빛깔에서 따온 것 같은 붉은 자주빛깔이다.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여인은 일어난다. 과연 키가 꽤 크다. 여인은 문을 연다. 한 여자가 그 여인에게 묻는다. “안나. 항아리를 주시겠어요? 물을 채워 드릴게요.”
그 여자는 다섯 살쯤 된 어린 사내아이를 데리고 왔다. 어린 사내아이는 이내 방금 안나라고 불린 여인의 옷에 매달린다. 여인은 어린아이를 쓰다듬으면서 다른 방으로 가서 아름다운 구리항아리를 가지고 온다. 그리고 찾아온 여자에게 항아리를 주면서 말한다.
  “아우는 늘 이 늙은 안나에게 착하게 구는구나. 하느님께서 이 어린 것과 행복한 아우님에게 지금 있고 또 있게 될 아이들을 통해서 상을 주시기를 바래요!” 안나는 한숨을 내쉰다.
  이 한숨 소리를 듣고 그 여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 여인을 쳐다보기만 한다. 그러다가 그가 짐작하는 슬픔을 달래려고 이렇게 말한다.
  “귀찮지 않으시면 알패오를 언니 곁에 남겨 두겠어요. 그러면 병 여러 개와 항아리 여러 개를 더 빨리 채우게 될 거예요.”
  알패오는 남아 있는 것을 매우 기뻐한다. 그런데 왜 그런지 이해가 된다. 어머니가 떠나자 안나는 어린아이의 목에 팔을 감고서 정원으로 간다. 그리고는 투명한 황금색 포도송이들이 달려 있는 시렁 높이까지 들어 올리며 말한다. “먹으렴, 먹어, 맛이 있단다.” 그러면서 열심히 따먹는 포도의 즙으로 범벅이 된 작은 얼굴에 여러 번 입을 맞춘다. 그러다가는 웃고 또 웃는데, 그의 입을 꾸미고 있는 진주 같은 고른 치아와 어린이가 “그럼 이젠 또 뭘 줄거야?” 하고 말하면서 어두운 하늘빛을 띤 회색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볼 때에 그 얼굴에서 나이의 흔적을 지우면서 나타나는 기쁨 때문에 갑자기 더 젊어보인다.
  여인은 기분 좋게 웃고 무릎 위로 몸을 숙이면서 말한다.
  “내가 너한테 무얼 주면 너는 나한테 무엇을 주겠니? ‥‥내가 너한테 무얼 주려는지 알아맞혀 봐라.”
  어린아이는 손뼉을 치고 활짝 웃으면서 말한다.
  “입 맞출거야, 입을 많이 맞출거야, 예쁜 안나 아줌마, 착한 안나 아줌마, 안나엄마한테 입 맞춰줄거야!…”
  “안나엄마”라는 말을 듣자 안나는 애정과 기쁨을 나타내는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는 꼬마를 품에 꼭 껴안으면서 말한다. “아이고 좋아라! 요 귀여운 것! 귀여운 것, 귀여운 것!” “귀여운 것”이라는 말이 나을 때마다 볼그레한 뺨에는 입이 맞추어진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이 어떤 선반으로 가니, 큰 접시에서 꿀로 빚은 빵 과자들이 나온다.
  “안나 아줌마의 예쁜 꼬마, 이건 내가 너 주려고 만든거다. 아줌마를 아주 좋아하는 너 주려고. 그런데 너는 아줌마가 얼마나 좋으냐?”
  그러니까 꼬마는 그가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을 생각하는 듯 이렇게 대답한다.
  “주님의 성전 만큼.” 안나는 또 생기가 넘쳐흐르며 반짝거리는 눈과 볼그레한 입에 입을 맞추고, 어린아이는 어린 고양이처럼 그에게 몸을 비빈다. 그의 어머니는 물이 가득찬 물병을 가지고 왔다 갔다 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는다. 그리고 그들이 애정을 토로하게 내버려둔다.
  나이든 남자가 정원에서 온다. 그 남자는 안나보다 좀 작고 머리가 아주 하얗다. 그의 해맑은 얼굴에는 네모꼴의 수염과 구렛나루가 둘러쳐져 있고, 거의 황금색에 가까운 엷은 밤색 속눈썹 사이에 있는 두 눈은 터어키 옥 같은 하늘색이다. 옷은 짙은 밤색이다.
  안나는 입구 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그를 보지 못한다.
  요아킴은 안나의 어깨를 잡고 “그런데 내게는 아무 것도 없소?” 하고 말한다. 안나는 돌아서며 말한다.
  “오, 요아킴, 일 다 끝냈어요?”
  동시에 어린 알패오가 요아킴의 무릎을 껴안으면서 말한다.   “아저씨한테두, 아저씨한테두.”
  그리고 노인이 몸을 구부려 입을 맞추니 어린아이는 두 팔을 노인의 목에 걸고 그 작은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고 그에게 입맞춤을 한다.
요아킴도 선물이 있다. 그는 등 뒤에 있는 도자기처럼 반짝이는 사과를 왼손으로 따가지고 게걸스럽게 손을 내미는 어린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입씩 먹을 수 있게 해 줄테니 기다려라. 너는 그냥은 먹을 수가 없어. 사과가 너만 하거든.” 그러면서 허리에 차고 있던 칼, 정원사가 쓰는 칼로 얇게 잘라 한입거리를 만든다. 그는 둥지에 있는 새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것 같다. 그만큼 정성을 들여 끊임없이 집어삼키는 벌어진 작은 입에 사과 조각들을 갖다 대준다.
  “아니 요아킴, 눈이 얼마나 예쁜지 보세요! 저녁 바람이 불어서 하늘에 나는 구름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의 갈릴래아 호수의 작은 조각들이 떨어져온 것 같지 않아요?” 안나는 한 손을 남편의 어깨에 얹고 가볍게 그에게 몸을 기대며 말한다. 깊은 아내의 사랑, 오랜 결혼생활 후에도 그대로인 사랑을 나타내는 몸짓이다.
  그러니까 요아킴은 사랑어린 눈으로 아내를 들여다보며 그의 동의를 표시하며 말한다.
  “대단히 아름답소! 그리고 이 굽슬굽슬한 머리털은? 꼭 여문 밀 빛깔 같지 않소? 속에 이 황금색과 구리빛이 섞인걸 보오.”
  “아! 만일 우리에게 아이가 하나 있으면 이런 눈과 이런 머리를 가진 아이였으면 해요‥‥.” 안나는 몸을 숙이고 무릎을 꿇기까지 하며 한숨을 지으면서 그 하늘빛을 띤 회색 눈에 입을 맞춘다.
  요아킴도 한숨을 쉰다. 그러나 아내를 위로하고자 한다. 그는 안나의 희어진 곱슬곱슬한 머리에 한 손을 얹고 말한다. “아직 희망을 가져야 하오.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소.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기적이 뜻 밖에 올 수 있소. 더구나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면 말이오.” 요아킴은 이 마지막 말을 몹시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안나는 자존심이 꺾여 입을 다물고 흐르는 두 눈물줄기를 감추려고 고개를 숙인다. 눈물은 어린 알패오만이 본다. 알패오는 좋아하는 아주머니가 제가 가끔 그런 일이 있는 것처럼 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가슴 아파한다. 그는 작은 손을 들어 그 눈물을 닦아준다.
  “안나, 울지마오! 우리는 그래도 행복하오. 적어도 나는 당신, 당신이 있으니까 행복하오!”
  “저도 당신이 있어서 행복해요. 그렇지만 당신에게 아이를 낳아드리지 못했어요‥‥ 주님께서 제 태를 임신을 못하게 하신 것을 보니 제가 주님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요.”
  “오 여보! 아주 거룩한 당신이 무엇으로 주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했겠소? 또 한 번 성전에 갑시다. 이를 위해서. 장막절을 위해서만 가지 말고. 기도를 오래 드립시다‥‥ 어쩌면 사라와‥‥ 엘까나의 안나에게 일어난 것과 같은 일이 당신에게 일어날지도 모르오. 그 여자들도 오래 기다렸고, 자기들의 불임증을 보고서 버림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었소. 그렇기는 커녕 하느님의 하늘나라에서는 그 여자들을 위해 거룩한 아들이 준비되고 있었소. 여보, 웃어요. 내게는 당신의 슬픔이 후손을 가지지 못한 것보다도 더 가슴 아프오‥‥ 우리 알패오를 데리고 갑시다. 그에게, 죄가 없는 알패오에게 기도를 하라고 합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이 아이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를 받아들이시고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실거요.”
  “그래요, 주님께 서원을 해요. 우리 아이는 주님께 바쳐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아이를 주시기만 하면‥‥ 오!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으면!”
  그러니까 놀라서 구경하고 있던 순진한 알패오가 “난 아줌마를 그렇게 부르는데” 하고 말한다.
  “그래. 요 귀여운 것‥‥ 그렇지만 너는 엄마가 있지만, 나는 아이가 없구나…”

  – 환상이 그쳤다.

  나는 이 환상으로 마리아의 탄생의 일련의 사건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것을 몹시 바랐었기 때문에 그것이 매우 기뻤다.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나는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내 딸아, 나에 대한 글을 써라. 이것이 네 모든 마음 고통에 대한 위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시면서 한 손을 내 머리에 얹고 쓰다듬어 주셨다. 그런 다음 환상이 왔다. 그러나 처음에, 그 연세 많은 부인의 이름을 듣기 전까지는 내가 우리 어머님의 어머니 앞에 있고 우리 어머님의 탄생과 은혜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