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초부터 1985년 4월 11일까지 제의방 맞은편 소성당에서 발현.

1981년 7월 이래로 종종 성당 안에서, 묵주기도의 끝에 있었던 발현은 이제 저장고로 이용되던 방으로 옮겨졌다. 제의방 맞은편에 있는 그 방은 순례자들의 호기심과 공산 경찰들을 자극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은둔처가 되었다. 이 방은 깨끗하고 훌륭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 후로는 그 방을 “발현 소성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2월 말이 되기 전에 결정적으로 옮겨지게 되었으며, 드문 몇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대로 되었다. (예외: 소성당이 붐빌 때 제의방에서의 발현, 의학적인 검사가 있을 때)

  
[ 1982년 1월 11일 월요일 ]

“매우 특별히 나는 너희에게 미사에 참례하기를 부탁한다. 성당에서 나를 기다려라, 그 곳은 적합한 장소이다.” (CP. 43).
  

[ 1982년 1워 14일 목요일 ]

기도와 노래, 질문이 있은 뒤에, 성모님께서는 두명의 선견자를 꾸짖으셨다. 그들의 행동 때문이었는데, 앞으로 다시는 같은 태도로 행동하지 말기를 청하셨다. 성모님께서 꾸짖으실 때 다른 선견자들은 뭐라고 하시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분의 안색을 보고 짐작할 뿐이었다. 꾸짖음을 받았던 선견자들은, 그 순간에 성모님께서는 부드럽고, 주의깊으며, 그들을 존중하시는 태도였다고 한다. (CP. 44).
  

[ 1982년 1월 18일 월요일 ]

심장에 문제가 있는 어떤 아픈 사람에 대해서:
“그녀에게는 희망이 없구나. 내가 그녀를 위해서 기도하겠다.”
성모님께서 떠나신 후에, 아이들은 십자가와 심장과 태양을 보았다. 그 표징은 때때로 나타났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CP. 46).
  

[ 1982년 1월 20일 수요일 ]

“이즈빅노에서 온 아이들이 내일 저희를 만나야만 합니까? 그들이 말하기를 성모님께서 이 만남을 그들에게 얘기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들을 만날 필요는 없다.”
“토미슬라브 신부님을 이 곳에서 옮기려 합니다.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요조 신부의 경우처럼, 그가 떠나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이라면, 그는 하느님의 뜻에 자기 자신을 단념해야 한다. 그는 많이 생각해봐야 하며, 너희들은 그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CP. 47).
  

[ 1982년 1월 21일 목요일 ]

선견자들: “구체적인 표징을 주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사제들이 확신을 갖게 되고 회개해서,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말입니다.”
“표징은 바라는 때에 나타날 것이다.”
“헤르체고비나의 다른 곳에서는 왜 발현이 있습니까?”
“내 아이들아, 믿음이 소멸되기 시작한 것을 보지 못하느냐? 사람들 사이에서 믿음을 깨워야할 필요가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느냐?”
“사제들 가운데 평화가 내리기 위해서는 저희가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단식하고 기도하여라!” (CP. 46).
  

[ 1982년 1월 22일 금요일 ]

“이즈빅노에서의 발현은 하느님께로부터의 것입니까, 혹은 악마로부터의 것입니까?”
“하느님께로부터의 것이다.” (CP. 47).
(메쥬고리예에서 60km 떨어진 곳. 18명의 사람들이 발현을 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