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9월 28일!
이날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밤새도록 유엔군이 남산 위에서 아래로 향하여 총을 발사하고 공산군은 밑에서 위로 응사하고 있었다. 도시 전체가 불바다였다. 공산군의 무시무시한 전차가 우르릉거리며 다니고 있었다. 나는 귀가 멎고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묵주를 꺼내어 성모 마리아님께 애절히 탄원하며 기도를 드렸다. 무엇을 빌어야 할 지 모른 채 기도만 드렸다.
드디어 끔찍할 정도로 요란했던 밤이 지나고 나는 동국대학교 옆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여기서 양쪽의 접전이 있었는지 유엔군과 북한군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모든 군인의 어머니들은 밤낮으로 그들의 아들이 무사히 고향에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으련만, 여기 이곳에서는 비참하게 일생을 마친, 말없는 시체들만이 즐비하게 널려있었다.
그것은 아주 처참한 장면이었다.
앞을 쳐다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의 바로 발 앞에 한 북한 병사의 시체가 있었는데, 다리 하나가 톱으로 썰듯이 잘려나가 없었고 한 다리는 공중으로 치켜져 있었으며 이(치아)는 모두 부서지고 두 눈을 뜬 채로 혀는 반쯤 나와 있었고 그의 입술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소름끼칠 정도의 비참한 모습이었다.
바로 그 옆에는 몸집이 큰 흑인이 누워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의 오른손의 가운데 세 손가락은 없고,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남아 있었다. 상처로부터는 피가 계속 흐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나는 이 처절한 현장에서 그가 남아있는 두 개의 손가락으로 묵주를 꼭 잡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피가 홍건히 고여있는 그의 가슴팍 쪽으로 무릎을 꿇어 그의 귀에 대고 영어로 크게 외쳤다.
“나는 천주교 신부입니다! 신부예요!”
그러나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숨을 크게 헐떡이며, 피묻은 남은 손가락으로 다음 묵주알을 집으려고 하였다. 피로 범벅된 그의 가슴은 따듯했다. 나는 다시 한번 내가 신부라는 것을 귀에다 대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의 퉁퉁 부은 오른쪽 눈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성유를 꺼내어 그의 이마에 바르면서 그가 무엇인가를 말하도록 하였다. 그가 웃었다. 그리고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숨을 힘겹게 쉬면서 그는 피묻은 손가락으로 피범벅이 된 묵주를 보여 주었다.
“아베 마리아! ” 라고 힘없이 중얼거리고는 손이 가슴 위로 떨어졌다. 그는 숨을 거두었다.
나는 이 비참한 상황에서도 성스럽고 아름답기까지 한 흑인의 죽음을 목격하고 나서 계속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 피흘리며 죽어간 이 병사의 마지막 말을 들으셨습니까? 어머니! 성모 마리아님! 그가 온몸과 마음으로 외친 말을 들으셨습니까? 어머니께서 그 외침을 들으셨다면, 이 젊은이를 어머니 품 안에 받아주소서! 멀리 떨어진 이방인 나라에서 외롭고 이름없이 그리고 비참하게 죽어가오니 그의 눈에는 피눈물이 맺히옵니다. 그로부터 모든 고통과 아픔을 걷어주소서!”
나는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았다. 세 손가락은 달아나고 남은 두 손가락으로 그는 이제 막 로사리오 기도 4단을 마쳤었다. 나는 피묻은 묵주를 들어 영광의 신비 제 5단을 암송하였다. 그 죽은 병사의 손가락으로 한 알씩 묵주를 쥐게 하고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아베 마리아”를 음송했다. 그는 이제 죽음의 문턱을 넘어섰기에, 내가 대신해서 그의 로사리오(묵주) 기도를 끝까지 마쳤다.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어머니를 부르면서, 최후를 마친 병사는 행복합니다 ”
“비록 손가락이 달아나고, 땅바닥에 모든 피를 흘리면서 아무의 도움없이 외로이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는 온 정성으로 뜨겁게 어머니에게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몸으로 살면서 죽음의 위기도 없는 우리는 어머니를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 어머니, 성모 마리아님에게 나아가지 않습니다. 흑인 병사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꾸준히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게 하소서! 이제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게 되면 그 흑인 병사의 피묻은 묵주기도가 잡혀지나이다 ”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그 흑인 병사의 외침을 들으셨습니까?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우리에게 귀기울여 주시고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사랑의 어머니 !”
출처; ‘ 메쥬고리예지’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