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오로 헤인즈 슈미트(마리아니스트회)

다음의 짧은 글은 한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아킬레스 로베르트 신부의 연례보고서(1908년)에서 발췌한 것이다.
한국 대구에서 생긴 일이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 역전에 있는 일본인촌에서 화재가 났던 때에 매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이 사건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수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갖게 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불은 한 일본인 집 부엌에서 시작되었다.
때마침 바람이 강하게 불어 불은 빨리 번져나갔다.
경찰의 요청을 받아 일본 군인과 한국 군인들이 도와주러 왔다.
그러나 군인들의 노력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불길을 잡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군인들은 몇몇 집들을 부수고서라도 불길을 잡으려고 했다.
희망이 없어져버린 이 지역에 한 그리스도인의 가게가 있었다.
이 가게에는 2만엔(당신 은행원의 월급이 40엔이었다고 함)어치나 되는 상품들이 있었다.
거센 불길과 연기때문에 물건들을 건지기란 불가능했다.
그런데 가게 주인인 교리교사 정 바오로는 성수를 한 병 가져다가 집에다 뿌렸다.
그리고 자신은 불길에 휩싸이지 않게 빠져나왔다.
어! 그런데 왠 기적인가!
갑자기 불길이 나누어지더니, 가게에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비켜 갔다.
이웃집들은 모두 불꽃의 희생물이 되어 있었다.
긴 대나무 가지에 걸려 집에 기대어 세워져 있던 깃발은 타버렸으나, 집은 그 불바다 속에서도 끄떡없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가게의 벽들이 석회가 떨어져 나간 곳은 있었으나 불에 그을린 곳은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했다.
두 달이 지난 오늘도, 이른 다섯 채의 집들이 재로 변해버린 그 곳에 그 가게만 홀로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