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심기도에 대한 보다 면밀한 검토  

(A Closer Look at Centering Prayer )

저자 : Margaret A. Feaster

Publisher & Date:
Ignatius Press, San Francisco, CA, October 2004

  향심기도 운동은 오늘날 가톨릭 단체들 안에서 매우 인기가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묵상의 집이나 연수회에서 그리고 때로 그들 자신의 본당에서 향심기도를 하기 위해 이름을 등록한다. 이 사람들은 향심기도가 성인(聖人)들에 의해 잘 다듬어진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관상적인 기도라 생각한다. 그럼 향심기도는 정말로 그리스도교적 관상인가?

  내가 지난 10여 년 동안 했던 뉴에이지에 관한 연구에 있어 나는 향심기도가 그리스도교적 관상이 아니라는 것과 이런 유형의 기도가 요한 바오로 2세, 라칭거 추기경,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또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에 의해 권고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하네뜨 벤코비치(Johnnette Benkovic)로부터의 경고들 또한 EWTN(안젤리카 수녀가 운영하는 가톨릭 종합네트워크)에 있었다. 요하네뜨는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것(Living His Life Abundantly)’이라는 프로에 출연하여서 뉴에이지에 관한 시리즈를 다루었다. 그녀는 또한 ‘뉴에이지는 모조품(The New Age Counterfeit)’이라 불리는 그녀의 저서에서 1개의 장을 향심기도의 문제들에 관해 할애한다. 그녀는 향심기도가 힌두교와 연관된 초월적 명상(TM)과 같은 것임을 확인한다.

■  향심기도는 무엇인가?

  바실 페닝턴 수사와 토마스 키딩 신부에 의해 가르쳐진 것과 같이 향심기도는 사람을 관상의 차원으로 이끈다고 가정한 기도 방법이다. 그것은 아침 20분 동안과 저녁 20분 동안 하게 되어있다. 기도를 하는 사람은 거룩한 단어를 선택한다. 그는 모든 생각들과 감각들을 무시하려고 하며, 그러한 것들이 의식의 흐름 아래로 가고 있는 배들로서 지나가게 한다. 잡념들로 돌아 가려할 때 사람은 거룩한 단어로 돌아온다. 목표는 모든 생각과 감각들이 사라질 때 까지 이러한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키딩 신부는 그의 저서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Open Mind, Open Heart)’에서 말하길 “만일 당신이 충분히 오랫동안 기다린다면 모든 생각들은 지나간다”1) 한 인격은 그때 의식의 순수한 상태나 정신적 무(無)의 상태에 도달한다. 생각의 진행은 중지된다. 이 기술은 하느님과 직접 접촉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생각은 참 차아를 발견하기 위해 당신의 존재 중심으로 가는 것이다. 이 과정은 아마 우리들이 지닌 감정적인 인습들의 결과인 거짓 자아의 장막을 벗길 것으로 생각된다.

  토마스 키딩은 미국 콜로라도 스노우마스(Snowmass)에 위치한 성 베네딕도 수도원의 수도승이자 사제, 그리고 베네딕도 수도원의 아빠스(대수도원장)으로서 향심 기도 운동의 창시자이다. 그는 4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바실 페닝턴 수사는 미국 메사추세츠 주 스펜서(Spencer)에 있는 성 요셉 대수도원의 트라피스트회 수도승이다. 그는 30여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으며, 그 중의 일부가 향심기도에 관한 것이다. 그들 저서들의 개념 중 상당수가 뉴에이지의 신념, 의식들과 유사하다.

■ 뉴에이지의 신념들은 무엇인가?

  뉴에이져들은 그들의 신념들 중 대다수를 힌두교로 부터 빌린다. 그들은 ‘우리 모두는 비인격적인 에너지 힘에 연결되어져있는데, 그것은 신이며 우리는 이 신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범신론의 이단은 교회에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단죄되었다.) 그들은 우리가 신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우리 자신은 신적인 힘을 경험하며 우리들의 현실을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이러한 신적 자아에 대한 자각은 신-의식, 초 의식, 그리스도-의식, 순수한 의식, 단일 의식 또는 자기실현 이라 불리어 진다. 이러한 자각에 도달하기 위해, 뉴에이져들은 그들 자신의 신성을 발견하고, 변경된 의식 수준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만트라 또는 요가를 사용한다.  참 자아 또는 더 높은 자아는 하느님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 참 자아 또는 더 높은 자아로부터 지식과 지혜를 발견하고자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 본다.

  그들은 신성한 에너지, 거룩한 사랑 에너지 또는 심오한 우주적인 지혜로서 신의 근원에 관해 언급한다. 뉴에이져들의 목표는 평화, 조화와 통합의 새로운 시대로 안내하는 것이다. 그들은 모든 인류가 이 ‘신적인 의식’에 다가 올 것을 바라며, 그것은 그들 자신이 신이라는 자각이다. 미치 패콰(Mitch Pacwa)신부에 의한 뉴에이지의 완전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 뉴에이지 운동은 아이디어와 경험들을 수많은 출처들로 부터 빌리는 고도의 절충주의이다. 힌두교, 선(禪:Zen), 수피교와 아메리카 원주민 종교들로부터의 묵상기술들을 인본주의적 심리학, 밀교(신비주의) 그리고 현대의 물리학과 뒤섞는다.”2) 콜로사이2:4-8절의 성경구절은 이러한 함정에 대항해 우리에게 경고한다. 거기서 언급하길 “여러분은 어떠한 궤변에도 넘어가지 말기를 당부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헛된 철학의 속임수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것은 세속의 원리를 기초로 인간이 만들어서 전해 준 것이지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것이 아닙니다.”

■ 뉴에이지의 믿음들과 향심기도는 어떻게 비교 되는가?

  향심 기도에 있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비우기 위해 기도 단어 또는 거룩한 단어를 사용 할 것을 가르쳤다.(키딩 신부에 따르면 그것이 만트라

[기도외우는 주문]는 아니라고 한다.) ; 그러나 만약 거룩한 단어가 모든 생각들과 감각들을 제거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면 그때 그것은 만트라와 같은 것이다. 목표는 중심에 있는 하느님을 찾기 위하여 순수한 의식 또는 정신의 무(無)에 도달하는 것이다. 순수한 의식은 의식의 변경된 수준이다. 이것은 바로 힌두교도들과 불교도들이 신적인 의식 또는 순수한 의식에 도달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배우 셜리 맥라인(Shirley MacLaine)이 변경된 의식의 수준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녀의 신격인 더 숭고한 자아 또는 그녀의 신성한 중심을 발견하였던 것과 유사한 것이다.

■  향심기도(CP)와 초월 명상(TM) 사이의 유사점은 무엇인가?

  요하네뜨 벤코비치(Johnnette Benkovic)는 향심기도와 초월명상(TM) 둘 다를 모두 했던 사람들을 그녀의 방송프로와 책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그들은 그 둘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일한 차이는 향심기도에 있어서 신성한 단어는 보통 예수, 하느님, 평화 또는 사랑이고 초월 명상(TM)에서는 힌두교 신들의 이름들로 기도하는 것일 것이다. 향심기도(CP)와 초월 명상(TM)에 몰두 했었던 핀바 플래내건(Fr. Finbarr Flanagan)신부가 말하길 향심기도는 ‘초월명상에 그리스도교의 옷을 입혀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는 ‘페닝턴 수사는 주저함 없이 초월 명상을 추천하였다…’ 고 말한다.3) 이제 이 둘의 유사점을 살펴 보자.

1) 향심기도(CP)와 초월명상(TM)은 둘 다 20분간의 묵상을 사용한다.
2) 향심기도(CP)와 초월명상(TM)은 둘 다 모든 생각과 감각들을 지우기 위해 만트라를 사용한다.
3) 향심기도(CP)와 초월명상(TM)은 둘 다  이 묵상에서 당신의 감정적 반응들을 집어내라고 가르친다.
4) 향심기도(CP)와 초월명상(TM)은 둘 다  이 묵상은 당신에게 긴장을 덜어주고 더 많은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5) 향심기도(CP)와 초월명상(TM)은 둘 다 어떻게 정신적인 무(無) 또는 변경된 의식수준에 도달하느냐에 대해 가르친다.
6) 향심기도(CP)와 초월명상(TM)은 둘 다 당신의 중심에 신을 찾는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감정적 반응들에 관하여 키딩 신부가 말하길 “당신이 실재의 더 깊은 수준으로 가고 있을때, 당신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던 감정적 반응들을 집어내기 시작하지만 그러나 그것들을 파악하지는 못합니다.4) 페닝턴 수사는 또한 ‘…신체적 반응들은 도움이 됩니다’ 고 말한다.5) (반응[vibration]들은 초월 명상에 일반적인 뉴에이지 언어이다.) 만트라를 사용하고 정신적인 무(無)에 도달하는 것 또한 뉴에이지이며 가톨릭 적이지 않다. 사실 정신적인 무(無)에 도달하는 것은 가톨릭 교리서에 기술되어 있는 것과 같이 잘못된 기도의 개념이다.(가톨릭교리서 2726항)

■ 우리가 기도 할 때, 언제 힌두교, 불교, 뉴 에이지 기도 선으로 넘어가는가?

  향심 기도 단계에 들어가면서, 영혼은 자신 안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을 무시한다. 이러는 동안에도 그들이 예수님이나 천상의 것들을 생각하고 있으면, 그들은 크리스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후 그들이 모든 생각과 느낌들을 다 무시하는 지점에 다다르면 그들은 선을 넘어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생각이 없어진 상태가 되는 것이다.  토마스 키팅 신부는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 저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기도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면서, 거룩한 단어들이 모두 없어지고 더 이상 생각이 없는 지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것은 어떤 공간으로서 종종 모든 의식이 정지된 상태를 체험하게 합니다.”6)  영혼이 이렇게 할 수 있게 되면, 그는 힌두교, 불교, 뉴에이지 기도의 선으로 넘어간 것이고, 더 이상 그리스도교의 기도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다.  토마스 키팅 신부는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열렬한 생각들조차 버리라고 가르치며 이렇게 말한다. “이 방법은 기도 중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 아주 열렬한 생각까지도 모두 무시하여야 합니다.”7) (그리스도교 기도는 이런 열렬한 생각들을 중요시하고 열망한다.)  그는 또한 모든 느낌들도 무시하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천상의 아버지나 성령을 향하는 사랑의 느낌조차 모두 버려야만 한다.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이런 종류의 기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라칭거 추기경의 소책자, ‘그리스도교 명상의 일부 측면에 관하여 가톨릭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모범과 가르침을 전체 교회에 지적해 주셨다. 그녀는 일생 동안, 신성의 심연 안에 막연하게 자신을 잠겨 들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제쳐놓으려는 특정 방법들의 유혹을 배격해야 했다. 1982년 11월 1일 강론 중에 교황께서는 그리스도께 온전히 집중되어 있는 기도를 주창한 성녀 데레사의 호소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단언하시면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그것은 복음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지 않으며 그리스도교 안에서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은 정신적 공허를 중시하여 실제로 그리스도를 제껴 놓으려는 일부 기도 방식을 배격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효하다. 모든 기도 방식이 유효한 것이 되려면 그리스도에 의해 활력을 지니고 또한 길이고 진리이며 생명이신 그리스도(요한 14,6 참조)에게로 이르는 것이어야 한다.”:Homilia Abulae habita in honorem Sanctae Teresiae:AAS 75(1983), 256-257.”  

■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께서는 관상기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키딩신부와 페닝턴 수사의 저서 속에서,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가 그들 기도 기술의 창시자인양 암시한다. 그러나 성녀의 책을 읽어보면, 성녀의 가르침은 키팅신부와 페닝톤 수사의 가르침과 전혀 반대임을 보게된다. 우선 성녀께서는 관상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말씀하시고, 그 어떤 기술도 이것을 일어나게 만들 수 없다고 하신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하는 이들 누구에게나 이 선물을 주실 수 있으시지만, 그분께서는 이런 은총을 대부분 깊은 기도 생활 속에 사는 이들과 많은 성덕을 행하는 이들에게 주신다고 한다. 또한 성녀께서는 관상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은총이라고 거듭 언급하신다. 성녀께서는 조용한 기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하느님과의 일치가 자기가 원할 때마다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라고 지적하신다.8) 그분의 저서 “영혼의 성”에서  보면, “기도는 반드시 마음이 작용하여야만 된다.”라고 말씀하신다.9) 라칭거 추기경의 소책자에서 성녀의 말씀을 이렇게 인용하고 계신다. ‘어떤 것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 관심 자체가 마음으로 아주 많이 생각하도록 충동질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신비를 그리스도교적 명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항상 ‘배신 행위’라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하였다.10) 데레사 성녀께서는 그분의 수녀들에게 관상할 때 “우선 그리스도의 수난을 생각하면서 관상을 준비하십시오.”라고 지시하셨다. 교리서에서는 관상을 “신앙의 눈길을 예수님께 고정시키는 것이다.”  (가톨릭교리서 2715항)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하고 마음이 작용되어야한다.

■ 라칭거추기경으로 부터의 마음을 비우는 기도에 관한 경고들은 무엇인가?

  70년대와 80년대에 그리스도교인들이 동양종교들을 취미삼아 해보는 문제들에 대해서 바티칸은 응답해야 했었다. 1989년에, 신앙교리성의 라칭거 추기경은, “그리스도교 명상의 일부 측면에 관하여 가톨릭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이라는 문헌을 발표하였다. 이 문헌에서는 “오늘날 그리스도교 세계와 교회 공동체들 안에 동양의 명상법들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각종 위험과 오류들로부터 벗어나지 아니한 시도 곧 그리스도교적 명상을 비 그리스도교적 명상과 혼동하는 시도의 움직임이 현저히 거세게 일고 있는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라고 언급한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길 “또 다른 부류의 어떤 사람들은 불교 이론에 고유한 것으로서 표상이나 개념이 불가능한 절대적인 것을, 유한한 실재를 훨씬 능가하는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느님의 위엄과 같은 수준 위에 서슴없이 올려놓으려 한다.”11) 그는 “불확정한 신성의 심연속의 몰입에 편들어” 그들이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포기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럴 때 그리스도교 명상과 동양의 기술들을 뒤섞는 것은 혼합 주의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종교들의 혼합)

■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비그리스도교 종교들에 관한 선언은 오해받는가?

  그렇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들이 언명하길 “가톨릭 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12) 그러나 공의회의 교부들은 동양의 기도 테크닉들의 실천을 추천하지 않고 있었다. 힌두교에서 신을 보는 관점이 그리스도교의 믿음과는 반대이다. 그들은 그들에게 있어서 뛰어난 신을 숭배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양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같이, 자신들이 신이 된다고 믿는다.

■ 키딩 신부는 “순수한 의식”에 도달하는 것에 관하여 무엇을 가르치는가?

  그의 책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Open Mind, Open Heart)’에서 키딩 신부가 말하길, “영혼이 차츰 당신의 기도에 대해 의무를 더욱더 지우는 만큼 당신의 참 자아에 대한 직관은 당신의 순수한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13) 그때 다시 순수한 의식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키딩은 “그 상태에 있어서는 자아에 대한 의식은 없습니다.” 라고 언급한다. “평상시 기능으로 다시 돌아 왔을 때, 평화로운 기쁨의 느낌이 있을지 모릅니다.”14)

■ 변경된 의식의 수준들은 무엇이고 무엇이 위험한가?

  TM(초월명상)을 미국에 소개 했던 힌두교의 교사 마하라시 요기(Maharashi Yogi)에게 물어보자. 핀바 플라내건 (Fr. Finbarr Flanagan) 신부는 그의 기사에서 쓰길 “TM의 창시자 마하라시 요기는 TM의 규칙적인 실행이 잠을 자는 것, 깨어 있는 것, 그리고 꿈을 꾸는 것 등 보통의 경험을 넘어 ‘단순한 의식(simple awareness)’ 이라 불리는 제4의 의식 상태로 이끈다고 주장한다. TM의 지속적인 연습은 우주의 의식으로 이끌고 우주의 의식에서 신-의식으로 마침내 ‘단일 의식(unity consciousness)’ 에 이르게 한다.”15) 이러한 변경된 의식수준들(ALC’s)에 도달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경험을 기분 좋은 황홀감(몽환의 경지)과 같은 상태로서 묘사한다. ALC’s에 관하여 라칭거 추기경이 말하길 “이것들은 오로지 기분 좋은 경험들만 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어떤 신체적 행위들은 평온과 긴장 완화의 느낌, 유쾌한 감정, 아마도 영적 안녕(well-being)과 흡사한 빛과 따스함의 현상들을 자동적으로 초래한다. 그러한 느낌들은 성령의 참다운 위안으로 간주하는 것은 영성 생활을 전적으로 그릇되게 이해하는 것이다.” 이어,..“당사자의 도덕적 상태가 신비적 체험에 부응되지 않을 때 신비적 체험에 특유한 상징적 의미를 그 같은 ‘느낌들에’ 부여하는 것은 일종의 정신 분열증을 나타내는 것이 될 것이며, 이 증세는 또한 심리적 불안정 그리고 때론 도덕적 탈선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16)

  클레어 머클(Clare Merkle)양은 이전의 뉴에이지 치료사이자 요가 숙련자로서 EWTN 네트워크의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것”이란 프로그램에 출연 했었던 적이 있다. 지금은 변화되었지만, 그녀가 뉴에이지에 휘말린 영향들로부터 해방되기 까지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이러한 경고를 한다. “우리가 신비로운 사상들에 의지하고 외국 종교들의 의식들에까지 우리 자신을 열 때 우리는 악마적인 것에까지 우리 자신들을 열게 됩니다.” (힌두교와 불교는 신비로운 사상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성령에 의한 것이 아닌 정신적인 능력에로 문을 두드린다.) 그녀의 웹 사이트 “The Cross and The Veil”, 에서 그녀는 뉴에이지로서 향심기도(CP)의 가면을 벗긴다. ( http://www.Crossveil.org 를 보라) 그녀는 변경된 의식수준(ALC’s)이 유체 이탈(out-of-body)의 경험이나 환각 상태로 이끌 수 있기 때문에 ALC’s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일부의 사람들이 ‘ALC’s 로부터 나올 수 없다‘라고 말했다. 키딩 신부는 그의 저서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Open Mind, Open Heart)” 120페이지에서 그의 추종자들 중 한 사람이 미사 동안에 변경된 의식수준들(ALC’s)로부터 나오고 있는 곤란을 겪었으며 집중할 수 없었다고 해설했다. 키딩은 그에게 그건 “그것이 가지는 멋진 문제입니다.” 라고 말했다. 바티칸의 구마 사제인 아모스 신부(Fr. Amorth)는 “요가, 선(禪 : Zen)과 TM(초월명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용인할 수 없는 것” 이라고 말한다. 흔히 이 외관상으로는 순진한 실행들은 환각상태와 정신 분열증의 조건들을 초래할 수 있다.17)

■ 향심기도가 하느님에 관하여 힌두교의 (그릇된)관점으로 이끌게 할 수 있는가?

  물론, 그렇다. 예를 들자면 키딩 신부는 동양의 종교들을 공부하였고, 그리고 “동양의 방법들에 필적할 만한 비슷한 것을 그리스도교의 영성에서 생각해내길” 원하였다.18) 그러나 그가 이 연구에 있어서 어디쯤에선가 ‘하느님에 관한 힌두교의 관점’에 굴복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책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Open mind Open heart ”에서 시종일관하여 그는 궁극의 신비, 궁극의 존재와 출처로서 하느님에 대해 언급한다. (이것은 하느님이 뉴에이지 신봉자들에 의해 불려지는 방법이다.) 셜리 맥라인(Shirley MacLaine)은 그녀의 책의 내부로 들어가노라면 하느님을 근원과 신성한 에너지로 부른다. 키딩의 새로운 저서 ‘사랑에로 초대 (Invitation to Love)’ 에서 그가 말하길 “하느님의 에너지는 본래 무한의 잠재성과 현실성입니다.”19) 페닝턴 수사도 그의 책에 유사한 언급들이 나타나는데, 참 자아, 거짓 자아가 만유에 있는 신의 사랑에너지로서 하느님을 말하고 있다. 가톨릭인으로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부르는 인격적인 하느님을 믿는다. 키딩은 또한 말하길, “당신이 기도를 하기위해 앉을 때, 당신은 전체의 정신을 모으며 하느님 안으로 녹아듭니다.”20) (하느님 안으로 녹아드는 것이 힌두교/불교/뉴 에이지의 믿음이다) 가톨릭의 교의는 이런 범신론의 개념을 반박한다. “그것은 미사 안에서, 우리는 그분의 신성(神性)의 참여자들임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 범신론의 의미 안에서의 영혼이 신성으로의 변화로 생각되어져서는 안 된다. 창조자와 창조된 존재들 사이에 거리는 무한이다.”(루드비히 오트 교수 가톨릭 교리의 개요 P 256)

■ 키딩과 페닝턴이 한 다른 진술들 중에 뉴에이지의 믿음들을 반영하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그의 책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 37페이지에서 키딩은 긴장을 푸는 것에 대해 요가와 조깅을 추천한다. 사실 요가 (명상들을 포함하는 유형) 는 힌두교의 한 형태이자 뉴 에이져들이 변형된 의식 수준들(ALC’s)로 들어가는데 있어 가장 일반적으로 쓰는 방법이다. 실제로 Webster’s Dictionary Library 에서는 이런 정의를 부여 한다: “요가는 자기 자신의 존재의 힘에 대한 지배를 얻기 위해, 신비로운 능력들을 얻기 위해 연습했던 엄격한 정신적인 규율이지만 그러나 주로 우주적인 정신 또는 신(God)과 더불어 결합에 이르기 위한 힌두교도들의 철학적 정신체계이다.”

  키딩의 책 ‘사랑으로의 초대 Invitation to Love’  125 페이지에서 그는 “에너지 센터들” 이라는 뉴에이지 일반의 언어를 말한다. 뉴에이져들은 몸에 샤크라(Chakras)라 불려지는 7개의 에너지 센터들을 가졌다고 믿는다. 페닝턴 수사는 그의 저서 ‘영혼 안에서 깨어나다 Awake in the sprit’ 97 페이지에서 ‘척수 시스템의 오르락 내리락하는 에너지들’에 대해 언급한다. 배우 셜리 멕라인은 그녀의 저서 ‘내면속으로 Going Within’ 64페이지에서 이와 유사한 말들을 한다. 그녀는 또한 그녀의 곧추선 등뼈와 함께 그녀가 앉을때 척추 기둥 속의 에너지를 묘사한다. 벤코비치(Benkovic)가 말하길, “힌두교는 쿤달리니 샥티(Kundalini Shakti)* 안에 존재하는 것은 척추의 근저에 하나의 삼각형(triangle- 사진을 참고 )이라 가르친다.”  쿤달리니 샥티는 사람이 깨는 때 이외에, 샤크라라고 불려지는 6개의 정신 센터들을 통해 지나가고, 그것이 머리 꼭대기에서 척추 윗부분으로 여행하는 것은 보통 수면 중이다. “쿤달리니 샥티가 샤크라를 통해 지나갈 때 사람은 정신의 경험들과 힘을 받는다. 그것이 샤크라 정상에 도달했을 때 추정상 기적과 해방을 수행하기 위한 힘은 실현됩니다.”21)

  랄프 카스(Ralph Rath)는 그의 책 “만트라(Mantras)”에서 말하길 “그의 책 앞부분에 성 필립 로메인(Philip St. Romain)에 의한 그리스도교 영성과 쿤달라니 에너지에서, 키딩은 쿤달리니를 ‘선(善)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 라고 말한다. 그리고 키딩은 통제되지 않은 쿤달리니가 사람을 죽게 할 수 있거나, 미치게 한다거나 또는 몇몇의 기도 요법들이 극단적으로 인격이 떨어 뜨려진 상태에서 쿤달리니를 사용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고 있다”22) 모든 영적인 힘은 성령 또는 악마로부터 오므로 그는 여기서 영적 식별력이 보이지 않는다.

   키딩과 페닝턴은 또한 “그리스도교 헤르메티즘*(비법 전수주의) 속으로의 여행”과 책 ‘타롯(Tarot)에 관한 명상’을 열성적으로 자켓 표지 위에 승인하였다. (타롯 카드는 점을 치는 한 방법이고 신명기 18장에서 금지되었던 것이다.) 핀바 플래내건 신부에 따르면 “타롯에 관한 명상들은 신비적이고, 신지학, 연금술적이며 비의(秘意)적인, 점성술과 환생의 생각들에 대한 혼합에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 그리고 수피교와 함께 뒤섞었던 방식에서 C.G 융의 일들을 생각나게 한다.”23)

 *역자 주: 쿤달리니 샥티(Kundalini Shakti): Kundalini-잠자는 우주의 에너지라는 뜻, Shakti-우주를 움직이는 활동적인 음 에너지 라는뜻 ,Kundalini Shakti는 크고 독이 있는 뱀의 힘을 상징 . 참고로 쿤달리니와 제3의 눈- http://blog.naver.com/korea0999?Redirect=Log&logNo=80026043230 고대 아쿼리언 시대 영혼의 눈

 *역자 주: 헤르메티즘에 대해서–절충주의, 존재론적인 이원론에 대한 거부, 우주의 긍정적이고 상징적인 특징에 대한 주장, 타락한 인류가 나중에 본래의 지위를 되찾는다는 사상. 헤르메티시즘 사상은 모든 종교 전통에 공통된 것으로 잘못 여겨진 고대 근본주의 전통인 이른바 영원한 철학(philosophia perennis)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였다. 르네상스 헤르메티시즘에서 고도의 의식적인 주술 형태가 발전하였다.

*역자 주: 타롯 카드(Tarot card)에 대해서 – 타로카드는 다양한 그림이 그려진 78매의 카드를 뽑아가면서 문제를 분석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일종의 점이다. 타로카드의 기원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며, 막연히 옛날 중국, 인도, 아라비아 등 여러 지역에서 유래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카드의 그림들은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부터 은둔자, 정의의 여신, 죽음의 여신, 광대, 마술사, 교수형을 당한 죄인 등 세상의 만물을 대변하고 있어 수만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 향심기도(CP)의 목표는 참 자아를 발견하는 것인가?

  그렇다. 그들의 모든 책들을 통해서 키딩과 페닝턴은 참 자아를 찾는 것에 관해 이야기 하며, 그것은 우리가 정말로 누구인지 깨닫는 것이다. 그럼 무엇이 정확하게 참 자아 인가? 키딩 신부가 언급하길 “하느님과 우리의 참 자아는 개별적인게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하느님은 아니지만, 하느님과 우리의 참 자아는 같은 것입니다.”24) 참 자아는 인간의 영혼과 같은 것으로 설명되어진 것인 이상 어떻게 그것이 전지 전능하신 하느님과 같을 수 있단 말인가? 영혼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 되어진다. 페닝턴 수사도 그의 책 ‘영혼 안에서 깨어나다Awake in the Spirit’ 에서 같은 생각을 나타내는데, 그는 책 81 쪽에서 우리의 “신격화 과정”에 대해 말한다. 참 자아의 개념은 힌두교로 부터 시작된다. 벤코비치(Benkovic)에 따르면, 힌두교도들은 다음의 것들을 믿는다 : “자아는 다름 아닌 브라만(Braham)또는 신이다. …참 자아는 신이다. 내가 ‘나’ 자신 이라고 간주하는 ‘나’ 는 실제로는 非자아 이다. 이 ‘비자아’는 환각, 무지와 속박의 세계에 붙잡혀 진다. 당신은 신의 내부에로 당신의 자기만의 자아-의식을 잃어버려야 한다. 당신은 ‘나는 브라만이다’ 라고 말해야 한다.”25) 맥라인(MacLaine)은 그녀의 책 ‘내면속으로 Going Within’ 83쪽에 더 높은 자아를 부르는 것에서 이와 같은 생각을 드러낸다. 그녀도 영혼이 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힌두교도들, 맥라인, 그리고 키딩 그들 모두는 참 자아(인간 영혼)는 하느님이라고 주장한다. 가톨릭인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런 주장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우리는 영혼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하느님보다 열등하며 죄악으로 더러워 졌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최후의 심판날에 하느님 앞에 가게 될 것임을 안다.

■  로마 교황청은 뉴에이지에 관한 문서를 발표하였나.?

  그렇다. 바티칸은 최근 “생명수를 지니신 그리스도 ; 뉴에이지에 관한 그리스도교적 성찰 ” 이라 불리는 문서를 발표했다. 그 문서는 특히 이하를 뉴에이지로서 확인한다. ‘선(禪) 불교, 힌두교, 요가, 에니어 그램, 위카(마법 숭배), 더 높은 자아, 참 자아, 변경된 의식수준(ALC’c),”내부의 신”, 그리고 TM(초월 명상)’등이다. 이러한 많은 믿음들과 실천들이 그들의 교구 프로그램, 강연회, 피정 센터들의 코스로 만들어 졌다. 훌륭한 가톨릭 신자들이 그들에게 좋은 가톨릭 프로그램임을 신뢰하면서 이러한 행사들에 참석한다. 그러나 바티칸의 문서는 뉴에이지 믿음들과 실천들이 그리스도와 그분 교회에 성실한 사람들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진술한다. 문서는 또한 뉴에이지 신봉자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작가들의 이름을 들었다. 그들은 구스타프 칼 융, 데이야르 드 샤르뎅, 그리고 토마스 머튼 이었다.

■ 키딩 신부는 몇몇의 주요한 성서 구절들을 잘못 인용하는가?

  그렇다 . 키딩은 마르코 복음 8장 34절의 예수님 말씀을 인용한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부정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한 내 제자라 할 수 없다.” 그는 거기에 없는 단어 즉 ‘마음 속 깊은 곳에’를 추가 한다. 그때 그는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 15쪽에서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의 자기의 부정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의 능력들인 우리의 지력과 의지에 대해 작용하는 습관적인 것들로 부터의 이탈입니다” 고 말한다. 이 성서의 의미는 우리의 십자가들을 지는 것이고 우리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 비우는 것과 관계가 없다.

  키딩은 또한 저서 ‘사랑에로 초대 Invitation to Love’ 129쪽에서 루카 복음 10 :20 절에 새로운 2개의 문장을 추가한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 종류의 성공에 흥분해지지 마십시요. 누구라도 신의 도움과 작은 정신 에너지로 기적들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즐거워 해야 하는 것은 당신의 이름이 천국에 쓰여진다는 것입니다.” 위 첫번째 2개의 문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수님은 정신에너지의 사용을 결코 제안하지 않을 것이다.

■ 키딩 신부는 성체에 관한 이상한 정의를 가지게 하는가?

  그렇다.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 128쪽에 그가 말하길 “성체 성사는 생명의 축전입니다; 인간의 인간들에 대한 의식의 발생과 인간 의식이 신 의식 으로의 변형은 우주의 모든 구성물질 요소들이 함께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공동체를 통한 신의 현시입니다. 우리는 성체가 되기 위해 성체를 받습니다.” 뉴에이져들은 모든 사람은 모두 신이라 믿는다. 우리 가톨릭 신앙에서 성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영혼과 신성이며, 또한 성체는 가장 위대한 신비이다. 우리는 히브리서 13장 9절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갖가지 이상한 가르침에 끌려가지 마십시오(히브13;9)”

요  약

1> 그리스도교 기도는 항상 정신과 마음을 필요로 한다. 관상을 위한 준비에서 조차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사람들에게 묵상을 하거나 슬픈 신비들을 “생각” 하도록 충고한다.

2> 마음을 비우는 기술은 그리스도교의 기도가 아니며 도리어 힌두교, 선 불교도들 그리고 뉴에이져들의 실습이라 해야 한다. 교황께서는 이런 유형의 기도가 “그리스도교 신앙에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3> 거기에 내포된 위험들은 변경된 의식수준 속으로 들어 간다는 것에 있다.

4> 참 자아는 하느님이 아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느님보다 열등하다. 인간의 영혼은 하느님 그분 스스로에 의해 창조된 것이고, 죄로 인해 더럽혀졌기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진다.

5> 신명기 18장에 기록된 ‘밀교적인 실행들의 관여’는 중대한 죄이다.

6> 가톨릭 교회의 교의와 힌두교, 선 불교와 뉴에이지는 서로 조합되지 않는다. 이러한 고대 종교들은 중대한 오류들을 포함하며, 그들의 믿음들은 가톨릭 신앙과 상반된다.

  글을 마치면서, 나는 토마스 키딩 신부나 바실 페닝턴 수사에 의해 쓰여진 책들을 추천하지 않고자 함을 말하고 싶다. 그들은 식별력의 부족을 보여 주었으므로 영적 성장을 위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소스가 아니다. 또한 일부 독자들은 그들이 이 책들을 통하여 힌두교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런 유형의 기도가 “그리스도 신앙에 아무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하셨던 교황께 동의한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비그리스도 종교들을 실천 하거나, 그것들이 가톨릭의 것과 섞이지(제설 혼합주의) 않게 한다. 우리들이 혼합주의를 실천할 때 진리와 오류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게 된다. 이러한 테크닉들의 결과로부터 기분좋은 경험들은 차츰 성체성사를 대신하기 시작할 수 있고, 사람은 창조주와 구세주로서 하느님의 모습을 잃어버릴 수 있다.

  주님께서는 힌두교인, 불교인들, 유대인, 무슬림인들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로서 그분께서는 우리들이 진정한 믿음에로 그들을 데려 오는 기회들을 찾길 원하신다. 만약 우리가 “중심”을 찾길 원한다면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들 인생의 중심에 모실 수 있다. 만일 우리가 기도하고 싶다면, 우리는 기도 시간 동안 그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수난에 대해 묵상할 수 있고, 덕행들을 실천할 수 있으며 그리고 어느날 그분께 진정한 관상으로 우리들에게 응하시도록 부탁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그리고 생명이심을 다른 이들에게 깨닫게 할 수 있다.

주>

1 토마스 키딩 Thomas Keating , ‘마음을 열고, 가슴을열고(Open Mind, Open Heart,) ;(Amity, N.Y.: Amity House, 1986), p.97.
2 미치 패콰 Mitch Pacwa , ‘가톨릭과 뉴에이지(Catholics and the New Age)’, (Ann Arbor, MI: Servants Publication, 1992) p. 14.
3 핀바 플래내건 Finbarr Flanagan, “향심기도: 그리스도교 시장에 대한 초월명상 (Centering Prayer Transcendental Meditation for the Christian Market ) : (Faith and Renewal, May/June, 1991) p. 2., 바실 페닝턴 으로부터 인용, Daily We Touch Him, (Garden City, N.Y. : Doubleday, 1977, p.68.
4 같은책., p. 2, 토마스 키딩으로부터 인용, “중심에 있는 평화를 찾기( Finding Grace at the Center )”, (Mass: St. Bede’s Publications, 1978, p.20.
5 같은책.,p. 2 바실 페닝턴으로 부터 인용, 향심 기도, (Garden City, N.Y.:Doubleday Image Books) p.234.
6 토마스 키딩 Thomas Keating, ‘마음을 열고, 가슴을열고(Open Mind, Open Heart,)’ p.114.
7 같은책., p. 35.
8 요하네뜨 벤코비치 Johnnette Benkovic , ‘뉴에이지는 모조품(The New Age Counterfeit )’, p. 23-24, quoting from The Life from the Collected Works of St. Teresa, Vol. 1, Washington Province of Discalced Carmelites, p.1976.
9 피터 토마스 라바흐Peter Thomas Rohrbach, 그리스도의 변화Conversation with Christ, by St. Teresa of Avila (Rockford, IL: Tan Publishing Co.) p.78, quoting St. Teresa of Avila, Interior Mansion, P. I. i.
10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 ‘그리스도교 명상의 일부 측면에 대해 전세계 가톨릭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Letter to the Bishops of the Catholic Church on Some Aspects of Meditation,)’, Oct. 15, 1989 (Text from English version published by St. Paul Books and Media, 50 St. Paul’s Ave., Boston, MA 02130) p.34.
11 같은 곳., p. 16.
12 오스틴 P. 플래너리Austin P. Flannery , Editor,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the Relation of the Church to Non-Christian Religions)” (Grand Rapids, Michiga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 1980) p.737.
13 토마스 키딩Thomas Keating,‘마음을 열고, 가슴을열고(Open Mind, Open Heart,)’, p. 51.
14 같은 책., p. 73-74.
15 핀바 플래내건 Finbarr Flanagan, “향심기도(Centering Prayer ) : 그리스도교 시장에 대한 초월 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 for the Christian Market )”, p. 2.
16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그리스도교 명상의 일부 측면에 대해 전세계 가톨릭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Letter to the Bishops of the Catholic Church on Some Aspects of Meditation), p. 28-29.
17 가브리엘 아모스Gabriele Amorth, An Exorcist Tells His Story, (San Francisco, CA.: Ignatius Press), 1999.
18 크리스 노블 Chris Noble , “그리스도교 명상과 향심기도(Christian Contemplation and Centering Prayer)”, Homiletic and Pastoral Review, March 1994, p. 25, quoting, “Contemplative Prayer”, U. S. Catholic, March, 1989, p.10.
19 토마스 키딩Thomas Keating, “사랑에로의 초대(Invitation to Love)”, (NewYork, NY: The Continuum Publishing Co., 2002) p.102.
20 토마스 키딩Thomas Keating , “마음을 열고, 가슴을열고(Open Mind, Open Heart)”, p.49.
21 요하네뜨 벤코비치Johnnette Benkovic, “뉴에이지는 모조품(The New Age Counterfeit)” , p.11.
22 랄프 라스Ralph Rath,  “만트라들 (Mantras)”, (South Bend, IN: Peter Publications, 1993) p. 25.
23 핀바 플래내건 Finbarr Flanagan, “향심기도: 그리스도교 시장의 초월명상(Centering Prayer: Transcendental Meditation for the Christian Marke)t”, p. 5.
24 토마스 키딩Thomas Keating,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Open Mind, Open Heart)”, p. 127.
25 요하네뜨 벤코비치Johnnette Benkovic, “뉴에이지는 모조품(The New Age Counterfeit)” , p. 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