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 대하여는 하느님께서 항상 자녀들의 청을 앞지르시고 한층 더 많이 주신다. 너도 이것을 믿고, 너희 모두 이것을 믿어라. 마음 은밀한 속에 박힌 칼 두 개를 가지고 나를 찾아 시돈에서 왔던 여자는 감히 칼 하나의 이름밖에 내게 말하지 못했다. 어떤 은밀한 고통을 드러내는 것은 ‘저는 병자입니다’하고 말하는 것보다 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둘째 기적도 주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어떤 동기로 인해서 갈라졌다가 이제는 다행히도 그 동기가 극복된 두 부부 사이를 다시 화합시키는 것이 눈동자 없이 태어난 두 눈에 두 눈동자를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 것처럼 항상 보였을 것이고, 또 지금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주님이시고 창조주이신 분에게는 눈동자 두 개를 만드는 것은 시체에 생명의 숨결을 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간단한 일이다. 삶과 죽음의 주제자이시고,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의 주제자이신 분에게는 틀림없이 생명의 숨결이 없지 않아서 그것을 죽은 사람들에게 다시 부어 주실 수 있고, 말라버린 눈에 칠할 체액(體液) 두 방울을 못 가지실리 않다. 그렇게 하칠 수 있으려면, 그것을 원하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만 그분의 의지에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의 화합의 경우에는 하느님의 소원과 일치한 사람들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자유를 강제하시는 일은 아주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하느님께서 너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신다.
우상 숭배자들의 나라에 살면서, 남편과 같이 조상들의 하느님을 계속 믿고 있던 그 여인은 벌써 하느님의 호의를 얻을 만한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을 인간 능력의 한계 너머까지 밀고 갔고, 믿는 유다인 대부분의 의심과 부정(否定)을 극복했으므로 -이것은 그 여인이 병이 고쳐진 아들을 데리고 돌아올 것을 확신하고 남편에게 ‘제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세요’하고 말한 것으로 증명된다. -그 여인은 두 가지 기적을 얻을 자격이 있었다. 그 여인은 남편의 정신의 눈을 뜨게 하는 그 어려운 기적을 받을 자격도 있었다. 아내의 사랑과 고통을 보지 못하도록 믿어서 죄가 아닌 죄를 아내에게 돌리던 남편의 정신의 눈을 말이다.
나는 또 -이것은 아내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들의 자매의 공손한 겸손을 깊이 생각하기를 바란다.
‘저는 남편을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여보 기다려 주세요> 하고’ 출생의 어떤 결함을 어머니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고 잔인한 짓이기 때문에 그 여인은 당당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의 마음은 불행한 아들을 보는 것으로 몹시 상해 있었다. 그 여인은 두 가지로 당당하였다. 왜냐하면, 자기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된 후로는 남편에게 버림을 받고, 남편이 이혼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아내’로, 즉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같이 남편에게 충실하고 복종하는 아내로 남아 있었다. 반항이나 복수를 하고자 하는 갈망도 없었고, 또는 ‘혼자 있는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다른 남자를 찾으려는 의향도 없었다. ‘만일 제가 아들의 병을 고쳐 가지고 돌아오지 못하면 저를 버리세요.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제 마음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지 마시고, 당신의 아이들에게 아버지 노릇을 거부하지 마세요.’ 사라와 옛날 히브리 여자들의 말을 듣는 것 같지 않으냐?
아내들아, 너희들이 지금 하는 말은 얼마나 다르냐! 그러나 또 너희들이 하느님에게서와 너희 남편에게서 받는 것은 얼마나 다르냐! 이래서 가정들은 점점 더 파괴된다.
언제나 그런 것같이, 나는 기적을 행하면서, 그것을 한층 더 날카롭게 하는 표를 주어야 했다. 나는 오랜 세월동안 내려오는 일련의 사고방식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고, 내게 절대적이던 어떤 종파에 의해서 지도되는 많은 사람을 설득해야 했다. 거기서 내 초자연적인 능력을 밝히 빛나게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 환시의 교훈은 거기에 있지 않다. 장미꽃을 기대하던 곳에서 가시를 만난 아내들과 어머니들아, 너희들을 찌르는 가시들 위에 꽃이 핀 새 가지들이 나는 것을 보라고, 그 교훈은 믿음과 겸손에 있고, 남편에 대한 충실에 있으며, 너희들의 가야 하는 올바른 길에 있다.
남자와 여자가 외롭지 않고, 영원히 오직 한 몸을, 결합했기 때문에 갈라질 수 없는 한 몸을 이룸으로써 서로 사랑하라고 혼인을 만드시고, 너희들의 결합에 당신의 강복이 내리라고, 또 내 덕택으로 부부로서 또 생식자로서의 너희들의 새로운 생활에 필요한 것을 받으라고 성사를 너희에게 주신 주 너희 하느님께로 향하여라. 그리고 자신 있는 얼굴과 영혼으로 하느님께로 향하려면, 남편의 집에 들어있는 단순한 손님이나 또는 그보다도 못한 것, 즉 어떤 여인숙에 손님들이 우연히 함께 있게 되는 것처럼, 우연히 한 지붕 아래 모이게 된 외부 사람과 같이 되지 말고, 남편의 성실하고, 착하고, 공손하고 충실한 참된 아내가 되어라.
지금은 이런 일이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남자가 그의 의무를 게을리 하느냐? 그는 잘못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너무나 많은 아내들의 행동방식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너희 아내들이 착한 남편에게 선을 선으로 갚고 사랑을 사랑으로 갚을 줄을 모르면 더구나 너희 행동방식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나는 너희들이 위선적으로 방탕하고, 또 너희들의 죄없는 자식들의 천사같은 영혼들이 에워싸고 있는 제단을 더럽힌다는 가중정상(加重情狀)과 더불어 창녀와 다를 것이 없게 되는 너무도 흔한 육체적인 부정(不貞)을 염두해 두고자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나는 내 제단 앞에서 맹세한 사랑의 계약에 대한 너희들의 정신적 부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를 탐하면서 보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간음하는 것이다.’ 또 이렇게도 말했다. ‘이혼장을 주고 아내를 돌려보내는 사람은 아내에게 간음할 위험을 당하게 한다’고.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많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외부 사람과 같은 존재인 지금,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남편을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정신과 그들의 육체로 사랑하지 않는 아내들은 남편을 간통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남편에게 그의 죄의 이유를 묻겠지마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그 죄의 원인이 된 아내에게도 그것을 묻겠다’고. 하느님의 율법은 그 범위와 깊이를 모두 이해할 줄 알아야 하고, 완전히 진실하게 그것을 생활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과는 상관이 없는 너는 내 평화와 함께 있어라. 그리고 네 마음을 내게 고정시켜 두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