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놀라울 만큼 사람이 붐비는 가리옷의 회당 안에서 말씀하신다. 지금은 개별적으로 개인적인 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청하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대답을 하고 계신 중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만족을 주신 다음 큰 소리로 말씀하기 시작하신다.
“가리옷의 여러분, 내 작별의 비유를 들으시오. 이 비유를 ‘두 가지의향’이라고 부릅시다.
어떤 완전한 아버지가 두 아들을 두었었는데, 둘 다 똑같이 현명한 사랑으로 사랑했고, 두 아들 모두가 좋은 길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랑하고 지도하는 데에 아무런 차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 아들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맏이인 한 아들은 겸손하고 순종하고, 아버지의 뜻을 군말 없이 행하고 항상 명랑하고 그의 일에 만족했습니다. 다른 아들은 비록 나이는 덜 먹었지만 자주 불만족해서 아버지와 논쟁을 하고 자신의 자아와도 논쟁을 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판단을 하고, 그가 받는 권고와 명령에 대해 대단히 인간적인 불쾌한 지적을 하곤 했습니다. 명령을 받은 대로 행하지 않고, 명령을 하는 사람이 바보인 것처럼, 명령의 전부 또는 일부분을 서슴지 않고 바꾸곤 했습니다. 형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아라. 아버지께 괴로움을 끼쳐드리는 거다’ 하고. 그러나 아우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형은 바보야, 귀가 그렇게 크고 뚱뚱하고, 게다가 맏이고 이제는 어른이 됐으면서 말이야. 나 같으면 아버지가 형을 놔둔 지위에 그대로 있지 않을 거야. 그러지 않고 그 이상의 일을 하려고 할 거야. 하인들에게 나를 인정시킬 거란 말이야. 형은 언제나 온순하니까, 형도 하인 같단 말이야. 요컨대 형은 맏이라는 자격이 있으면서도 얼마나 눈에 띄지 않는 존재가 되는지 몰라? 어떤 사람들은 형을 비웃기까지 한단 말이야….’ 아우는 유혹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유혹을 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탄의 제자가 되어, 사탄의 모든 암시를 주의 깊게 실천에 옳기면서, 형을 유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형은 율법을 지켜 주님께 충실하고 그의 완전한 처신으로 공경하는 아버지께도 충실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여러번 ‘양보다도 더 순진한 저 바보에게 내맡기지 말고 제게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행동하게 해 주세요’하고 청하고. 형을 부추겨서, 하인들과 동향인들과 이웃들에게 자기를 인정하게 하도록 아버지가 명령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하게 하려고 애쓰고 나서, 자기가 열망하는 대로 세력을 떨칠 수 없는데 화가 나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오! 이젠 지긋지긋하다! 이건 우리의 평판이 걸려 있는 문제야! 아무도 행동하려고 하지 않으니, 내가 행동하겠다’ 하고 그리고는 교만과 거짓말에 빠져들고, 거리낌 없이 불복종하면서 제 마음 내키는 대로만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네 형에게 순종해라, 네 형은 일을 잘 처리할 줄 안다.’ 또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냐?’하고. 그러니까 작은 아들은 어깨를 들썩하면서 아버지의 이 말, 저 말에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형이 안다구요, 안다구요! 형은 너무 소심하고 망서리고 해요. 형은 성공을 거둘 기회를 놓쳐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하고,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아무개 아무개의 도움을 구하지 말아라. 우리 이름을 빛나게 하는데 우리보다 너를 더 잘 도와 줄 사람이 누구란 말이냐? 그들은 나중에 너를 희생시키며 즐기려고 너를 부추기는 거짓 친구들이다.’ 그러면 작은 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앞장서서 일하는 것이 샘이 나시는 겁니까? 게다가 저는 제가 잘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고.
세월일 또 흘렀습니다. 형은 올바른 일을 점점 더 많이 했고, 아우는 나쁜 격정을 길러 가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이제 결말을 낼 때가 되었다. 네가 내 말에 복종하던가 내 사랑을 잃던가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해라.’ 반항하는 아들은 그의 거짓 친구들에게 가서 이 말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낸 그 때문에 걱정을 하나? 그럴 필요 없어! 아버지가 한 아들을 다른 아들보다 더 여기지못하게 할 방법이 있네. 아버지를 우리 손에 맡기게, 그러면 우리가 떠맡을 테니까. 자네는 물질적인 잘못을 면할 것이고, 또 너무 너그러운 사람을 없애버린 다음에는 자네가 재산을 크게 빛나게 할 수 있을 터이니까. 자네의 소유 재산이 다시 번영할 걸세. 비록 그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소유재산을 망치는 무기력보다는 폭력적인수단이 낫다는 것을 자넨 모르나?’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사악(邪惡)이 가득한 작은 아들은 비열한 음모에 가담했습니다.
이제는 생각해 보십시오. 혹 아버지가 자기 아들들에게 두 가지 교육 방식을 썼다고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가 공범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한 아들은 거룩한데, 어떻게 다른 아들은 비뚤어졌습니까? 사람의 의지는 미리부터 그에게 두 가지로 주어졌습니까?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방식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것을 제멋대로 바꿉니다. 착한 사람은 자기의 의지를 착하게 하고, 악한 사람은 나쁘게 만듭니다.
가리옷의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다만 착한 뜻만을 따르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혜의 길을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권고하는 마지막 번이 되겠습니다. 내 임무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나는 내가 날 때에 노래 불러진 말들을 여러분에게 하겠습니다. ‘착한 뜻을 가진 사람에게는 평화가 있다.’ 평화! 즉 성공, 즉 땅과 하늘에서의 승리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할 착한 뜻을 가진 사람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자진해서 하는 빛나는 행동보다는 오히려 당신이 권하시는 일에 겸손하고 재빠르고 충실하게 순종하는 것을 중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스라엘의 역사의 두 가지 일화를 상기시키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받는 명령을 짓밟으면서 자기 자신의 뜻대로 하고자 하는 곳에는 안 계시다는 두 가지 증거입니다. 마카베오서를 봅시다. 거기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유다 마카베오가 요나단과 같이 길르앗으로 싸우러 가고 시몬이 다른 사람들을 갈릴레아에서 구하려고 가는 동안, 백성의 우두머리들인 즈가리야의 요셉과 아자리야는 유다에 남아서 그것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유다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백성을 돌보아라. 그리고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는 다른 나라들과 싸움을 하지 말아라’하고 그러나 요셉과 아자리야는 마카베오 형제들의 큰 승리들 이야기를 듣고, ‘우리도 이름을 날리자.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을 공격하러 가자’고 말하면서 그들을 본받으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패배했고 추적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영웅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하고 유다와 그 형제들에게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민족은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교만과 불복종이었습니다.
또 열왕기*에는 어떤 말이 있습니까? 사울이 첫번째와 두번째 배척을 당했는데, 두번째는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척을 당해서 다원이 그를, 대신해서 선택되기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불복종했기 때문에! 기억하시오! 기억하시오! ‘야훼께서 당신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번제나 친교제 바치는 것을 더 기뻐하실 것 같소? 순종하는 것이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낫고, 그분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양의 기름기보다 낫소. 그분을 거역하는 것은 점쟁이 노릇 만큼이나 죄가 되고 그분께 대드는 것은 우상을 위하는 것만큼이나 죄가 되오. 그대가 야훼의 말씀을 거역하였으니, 야훼께서도 그대를 왕의 자리에서 내쫓으려고 그대에게서 왕권을 빼앗으셨소’*라는 말을. 기억하시오! 기억하시오! 사무엘이 순종하여 틀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주님이 그곳에서 다른 왕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베들레헴의 이새의 집에 갔을때, 제사를 드린 후 이새가 아들들과 같이 잔치 방으로 들어왔고 그때 그 아들들이 사무엘에게 소개되었습니다. 우선 키가 크고 미남자인 맏아들 엘리압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얼굴이나 키를 보지 말아라. 그는 이미 내 눈 밖에 났다.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나 야훼는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그래서 사무엘은 엘리압을 왕으로 뽑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아미나답이 소개되었지만 사무엘은 말했습니다. ‘이 아들도 야훼께서 뽑으신 아들이 아니요’ 하고 그러자 이새는 삼마를 보였지만, 사무엘은 ‘이 아들도 야훼께서 뽑으신 아들이 아니오’ 하고 말했습니다. 잔치방에서 소개된 일곱 아들 모두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이들이 당신의 아들 전부요?’하니까, 이새는 ‘아닙니다. 양을 치고 있는 아직 어린 아들이 하나 남아있습니다.’ ‘사람을 보내 데려 오시오. 그가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 없소.’ 그리고 금발이고 잘 생긴 어린 다윗이 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그가 왕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사람을 선택하시고, 교만과 블복퐁으로 자기의 뜻을 타락시킬 사람은 잘라버리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언제까지나 아시오. 나는 이번 이후에는 여러분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은 지금 그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후에 제자가 선생 이상이 될 것입니다. 그 때를 위해 여러분의 마음을 준비하시오. 내가 태어난 것이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구원이 된 것과 같이, 나의 도달(到達)도 내 가르침을 통하여 나를 선생으로 따름으로 착한 뜻을 가질 사람들과, 내가 도달한 후에라도 나중에 내 가르침을 통하여 나를 따를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구원이 될 것입니다.
가리옷의 남녀 여러분, 어린이들,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히! 서로 눈을 똑바로 들여다봅시다! 내 마음과 여러분의 마음이 사랑과 작별의 껴안음으로 하나가 되게 합시다.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 다시는 영영 오지 못하게 될 때에도 사랑이 항상 생생하게 남아 있게 합시다….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에는 한 의인이 영광의 환영을 보는 가운데, 그의 구세주의 입맞춤을 받으면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오는 이번에는 여러분에게 사랑을 가지고 강복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에게 믿음과 바람과 사랑을 완전히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여러분에게 사랑, 사랑, 사랑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당신께 대한 사랑을, 나와 착한 사람들과 불행한 사람들과 죄 있는 사람들과 자기의 탓이 아닌 죄의 짐을 짊어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이것을 기억하시오. 그리고 착하게 살고, 불의한 사람이 되지 마시오. 내가 죄인들을 용서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사랑으로 감쌌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한 가정에도 착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것과 같이, 착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전체를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가정에 가족 중의 한사람이 나쁘다고 해서 그 가정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 입니다.
나는 갑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내게 말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 아직 있으면, 저녁때에 시몬의 마리아의 별장으로 오시오.”
예수께서는 손을 들어 강복하시고 나서 옆문으로 빨리 나가신다. 제자들이 예수를 따라간다.
사람들이 수근거린다.
“다시는 안 오신대!”
“무슨 뜻일까?”
“하직 인사를 하실 때, 눈에는 눈물이 괴어 있었어….”
“자네들 들었나? 올라간다고 말씀하셨어!”
“그러면 유다의 말이 정말 옳아! 분명히 나중에 왕이 되셨을 때에는 지금처럼 우리 가운데 계시지는 않을 거야….”
“그렇지만 나는 선생님의 형제들과 말을 했는데, 그 사람들의 말로는 선생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왕이 되시지 않고, 예언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구속의 왕이 되실 거래. 메시아이실 거라 이거야!”
“틀림없이 메시아 왕이 되시는 거야!”
“천만에! 구세주이신 왕이야. 고통을 당하는 사람.”
“그래.”
“아니야….”
그러는 동안 예수께서는 빨리 들판 쪽으로 가신다.
* 역주 : 공동번역에는 사무엘 상.
* 역주 : 사무엘 상 15장 22-2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