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늦은 시간이다. 여기저기 나무들이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겨우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제는 밤이 다 된 것 같다. 그 나무들은 올리브나무 같지만 빛이 없기 때문에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요컨대 그 나무들은 보통 올리브나무들이 그런 것처럼 키가 중키이고 잎이 우거지고 줄기가 뒤틀린 나무들이다.
예수께서는 흰옷 위에 짙은 파란색 겉옷을 입고 혼자이시다. 올라가시며 나무들 사이로 깊숙히 들어가신다. 예수께서는 서두르지 않으시고 성큼성큼 조용히 걸으신다. 그러나 보폭(步幅)이 넓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셔도 길을 많이 가신다. 예수께서는 일종의 자연적인 발코니에 이르시기까지 걸으신다. 거기서는 지금 하늘에 빛나는 눈처럼 총총 박혀 있는 별빛을 받으며 아주 고요한 상태인 호수가 내려다보인다. 고요가 예수를 감싸 휴식을 드린다. 고요는 예수를 군중과 땅에서 떼어놓아 그것들을 잊으시게 하고 하늘과 결합시킨다. 하늘은 하느님의 말씀께 경배하고 그 천체들의 빛으로 어루만져 드리기 위하여 내려앉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늘 취하시는 자세로, 즉 서서 팔을 십자로 벌리시고 기도하신다. 예수님 뒤에는 올리브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그 우중충한 줄기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처럼 보인다. 예수의 키가 크기 때문에 나뭇잎들은 예수의 머리보다 별로 높이 떨어져 있지 않아서 그리스도께 어울리는 말로 십자가에 달았던 명패를 대신한다.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왕”이라고 씌어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평화의 왕”이라고 말한다. 평화스러운 올리브나무는 들을 줄 아는 사람에게는 그 의사를 잘 표현한다. 예수께서는 오랫동안 기도하신다. 그리고는 올리브나무의 바탕 노릇을 하는 발코니 위에 튀어나와 있는 굵은 뿌리에 걸터앉으셔서 일상 취하시는 자세를 취하신다. 즉 양손을 모으시고 팔꿈치는 무릎에 얹으셨다. 묵상을 하신다. 혼자 계시면서 아마 온전히 하느님께 전념하고 계시는 이 순간에 예수께서 아버지와 성령과 더불어 하느님으로서의 어떤 대화를 나누고 계신지 누가 알겠는가? 하느님께서 하느님과 하시는 대화!
별들이 이동하여 여러 별이 벌써 서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을 보면 여러 시간이 이렇게 지나가는 것같이 생각된다.
빛 같은 것, 아니 그것을 아직 빛이라고 부를 수는 없기 때문에 오히려 빛남 비슷한 것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이 동쪽 지평선 저 끝에 보이기 시작하는 바로 그때에 산들바람이 불어 올리브나무가 흔들린다. 그러다가 고요해진다. 그 다음에는 바람이 더 세차게 다시 분다. 바람은 멎었다 다시 불었다 하면서 점점 더 세차진다. 겨우 시작되던 새벽빛은 점점 더 세게 몰아치는 돌풍에 밀려 와서 하늘을 뒤덮는 시꺼먼 구름 덩어리 때문에 그 진행이 멎었다. 호수도 이제는 잔잔하지 않다 호수는 내가 폭풍우의 환시 때에 이미 본 것과 같은 광풍을 겪을 것 같다 조금 전만 해도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던 공간이 이제는 나뭇잎 살랑거리는 소리와 파도의 으르릉 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예수께서는 명상에서 깨어나신다. 일어나셔서 호수를 바라다보신다. 예수께서 아직 남아 있는 별들과 달이 난 새벽의 빛으로 베드로의 배를 찾으시다가 발견하신다. 베드로의 배는 건너편 호안을 향하여 애써 나아가고 있으나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겉옷을 꼭 여미시고, 너풀거려 내려가는 데 방해가 될 깃을 두건 모양으로 머리 위로 올리시고 빨리 내려오시는데, 올라오실 때 이용하셨던 길로 내려오지 않으시고, 직접 호수로 가는 가파른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신다. 어떻게나 빨리 걸으시는지 꼭 날아가시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모래사장에 요란스럽고 거품이 이는 선을 둘러치는 파도가 후려치는 호숫가에 이르신다. 예수께서는 마치 몹시 출렁이는 물 위를 걷지 않으시고 매끈하고 단단한 마루 위를 걸으시는 것처럼 길을 계속하신다. 이제는 예수께서 빛이 되셨다. 져가는 드문드문한 별들과 폭풍이 몰아치는 새벽에서 아직 오고 있는 얼마 안 되는 빛이 예수께로 집중해서 일종의 인광(燐光)을 이루어서 그분의 날씬한 몸을 비추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파도 위로, 거품이 하얗게 이는 파도 꼭대기 위로, 파도와 파도사이의 어두운 골 사이로 팔을 앞으로 내미시고 날아가신다. 겉옷은 뺨 둘레로 부풀어 오르고, 몸에 꼭 달라붙게 졸라매진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날개를 치듯 펄럭인다.
사도들이 예수를 보고 무서워서 비명을 올린다. 그 소리가 바람에 불려 예수께 이른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나다.” 예수의 목소리는 맞바람이 부는데도 어렵지 않게 호수에 퍼진다.
“정말 선생님이십니까?” 하고 베드로가 묻는다.”만일 선생님이시면, 저더러 선생님처럼 물 위를 걸어서 마중 나오라고 말씀하십시오.”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마치 물 위를 걷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인 것같이 그저 “오너라” 하고만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소매가 없는 속옷을 입고 있는 터이라 반라(半裸)의 몸으로 뱃전을 뛰어 넘어, 예수께로 향하여 간다.
그러나 배에서 50미터쯤, 예수께서도 그쯤 되는 곳에 이르렀을 때 그는 겁이 더럭 났다. 그때까지는 그의 사랑의 충동으로 지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인성이 그를 눌러 이겨서 …그의 목숨 때문에 몸이 떨리게 되는 것이다. 꺼지는 땅이나 움직이는 모래를 발고 있는 사람과 같이 그는 비틀거리고 몸이 흔들리고 잠겨 들어가기 시작한다. 몸을 흔들고 겁이 나서 떨면 그럴수록 점점 더 빠져 들어간다.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내려다보신다. 정색을 하시고 기다리고 계시지만 그에게 손도 내밀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팔짱을 끼신 채로 계시다. 이제는 한걸음도 나오지 않고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베드로는 빠져 들어간다. 발목이 사라지고, 다음에는 정강이, 다음에는 무릎이 보이지 않게 된다. 물은 서혜부(鼠蹊部)까지 와서 거기를 지나 허리쪽으로 올라온다. 공포가 그의 얼굴에 역력히 나타난다. 그의 생각도 마비시키는 공포이다. 이제는 물에 빠져 죽을까 봐 겁을 내는 육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물로 뛰어들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는 공포로 인하여 얼이 빠졌다.
마침내 베드로는 예수를 쳐다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의 정신이 이치를 따지고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 시작하는 데에 예수를 쳐다보는 것으로 넉넉하였다.
“선생님, 주님, 살려 주십시오.”
예수께서는 팔짱끼고 계시던 팔을 뽑으시고 마치 바람에 불리시고 물결에 밀리신 것처럼 사도에게로 달려가셔서 손을 내미시며 말씀하신다.
“오! 믿음이 부족한 사람. 왜 내게 대해 의심을 가졌느냐? 왜 너 혼자서 행동했느냐?”
예수의 손을 꽉 잡은 베드로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는 예수께서 화가 나셨는지 보려고 쳐다본다. 솟아나기 시작하는 뉘우침과 섞인 아직 남아 있는 공포를 가지고 예수를 쳐다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배에까지 이르러서 뱃전을 넘어서 배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베드로의 손목을 꼭 잡고 계시다. 그리고 예수께서 명령하신다.“호숫가로 가자. 이 사람은 흠뻑 젖었다.” 그러시면서 창피를 당한 제자를 들여다보시며 빙그레 웃으신다.
파도가 가라앉아 배를 대기 쉽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번에는 야산에서 내려다보았던 도시가 이번에는 호숫가 저쪽에 나타난다. 환시가 여기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