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많이도 온다! …” 하고 마태오가 탄성을 올린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대답한다. “저것봐! 갈릴래아 사람들까지 있어. … 아이구! 아이구! 선생님께 가서 말씀드리세. 저 세 사람은 양반인 척하는 도둑놈이야!”
“저 사람들 아마 나 때문에 오는 모양인데. 여기까지 쫓아오는구먼.”
“마태오, 그렇지 않아. 상어는 잔챙이는 먹지 않아. 사람을 먹으려는 거야. 고급 먹이를 말이야. 그런 먹이를 발견하지 못할 때만 큰 고기를 덥석 무슨거지. 그렇지만, 나나 자네나 다른 사람들은 잔챙이란 말이야. … 보잘 것 없는 먹이란 말이야.”
“선생님 때문이란 말인가?” 하고 마태오가 묻는다.
“그럼 누구 때문이겠어? 저 사람들이 얼마나 사방을 휘 둘러보는지 못보나? 꼭 영양(羚羊)의 발자취 냄새를 맡는 야수들 같단 말이야.”
“선생님께 가서 말씀드려야지 ….”
“기다리게! 알패오의 아들들에게 말하세. 선생님은 너무 착하셔. 그 친절이 저 아가리 속으로 떨어지면 쓸 데 없는 친절이 된단 말이야.”
“자네 말이 옳아.”
두 사람은 강으로 가서 야고보와 유다를 부른다. “이리들 오게. 녀석들이 왔어. … 극악한 놈들이. 그자들은 틀림없이 선생님을 귀찮게 하려고 오는거야.”
“가세. 선생님은 어디 계신가?”
“아직 부엌에 계셔. 빨리 하세. 선생님이 알아차리시면, 못하게 하실테니까.”
“그래, 그런데 그건 선생님이 잘못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들은 마당으로 돌아온다. “갈릴래아 사람” 이라고 지적된 한떼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거만하게 말한다. 알패오의 유다가 우연히 지나가는 것처럼 가까이 간다. 그는 이런 말을 듣는다. “… 말이 사실로 뒷받침돼야지.”
“그런데 선생님은 사실을 행하신단 말입니다. 어제도 마귀들린 로마인을 고쳐주셨습니다.” 하고 건장하게 생긴 서민층 사람이 대꾸한다.
“아이고! 소름끼친다! 이교도를 고쳐 주다니! 파렴치한 일이야! 엘리, 들었나?”
“그 사람에게는 죄라는 죄는 전부있어. 세리와 창녀들과 친하지, 이교도들과 관계를 맺지, 그리고 또 ….”
“그리고 험구가들을 참아견디는 힘을 가졌군요. 이것도 죄지요. 내가 보기에는 제일 큰 죄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걸 모르시니까 자기 자신을 변호하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나하고 얘기합시다. 나는 그분의 형이요. 그리고 이 사람은 더 큰 형이고, 말하시오.”
“그런데 왜 그렇게 벌컥 성을 내십니까? 우리가 메시아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천만에요! 우리는 그분의 명성을 듣고 그렇게 먼 곳에서 왔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도 그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
“거짓말 마시오! 당신이 하도 기분이 나빠서 등을 돌리겠소.” 그러면서 알패오의 유다는 아마 원수에 대한 그의 사랑이 위태롭게 되는 것을 느꼈는지 딴 곳으로 가버린다.
“그게 참말이 아니오! 당신들 모두 말해 보시오 ….”
그러나 “당신들 모두”, 즉 그 갈릴래아 사람들과 말을 하던 다른 사람들은 침묵을 지킨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기는 싫고 감히 반대는 하지 못한다. 그래서 잠자코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이 어떤지도 모릅니다. … 하고 갈릴래아 사람 엘리가 말한다.
“당신은 내 집에서 선생님을 모욕하지 않았지요!” 하고 마태오가 빈정거리며 말한다. “당신 병 때문에 기억력이 없어진겁니까?”
“갈릴래아 사람”은 제 겉옷을 집어 가지고 다라는 사람들과 같이 가버린다.
“비겁자!” 하고 베드로가 등에 대고 외친다.
“저 사람들은 선생님에 대하여 우리에게 끔찍한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 하고 한 사람이 설명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 반면에 우리는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압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믿겠습니까? 정말 친절하신 착하신 분을 믿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착하다고 주장은 하지만 사실은 골칫거리에 지난지 않는 악인들을 믿겠습니까? 나는 선생님께로 온 다음부터는 나 자신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아주 변했습니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난폭하고 무자비했고, 이웃에게 버릇없이 굴었는데, 지금은 … 우리 동네에서는 모두 이렇게 말합니다. ‘아자리아’는 그전 아자리아가 아니야.’ 하고. 그렇다면? 마귀가 사람들을 착하게 만든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있습니까? 그럼 마귀가 무슨 일을 하는겁니까?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일을 합니까? 아이고! 그가 주님을 위해서 일한다면 정말이지 괴상한 마귀겠는데요!”
“여보, 당신 말 잘했습니다. 당신은 잘 이해할 줄 알고, 잘 보고 잘 행할 줄 아니, 하느님께서 당신을 보호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계속하시오. 그러면 축복받은 메시아의 참 제자가 될 것이고, 당신들의 이익을 원하시고 당신들을 그리고 인도하기 위해 모든 것을 참아받는 그분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된 악에 대해서만 분개하시오. 그러나 그분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동하시는 것을 보면 분개하지 마시오. 그리고 비록 새로운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파렴치한 행위라고 믿게 하려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마시오.
새 시대가 왔습니다. 그것은 뿌리가 여러 세기 동안을 활동한 다음에 피게 될 꽃과 같습니다. 만일 그분이 오시기 전에 여러 세기 동안의 기다림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나이산에서 받은 율법을 여러 세기 동안 지킨 것으로 인해서 우리는 최소한의 준비를 할 수가 있어서 이 새로운 시대에 지극히 인자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게 해주신 하느님의 꽃의 모든 향기와 모든 진을 들이마셔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우리의 기운을 북돋우고, 우리를 제단처럼 향기롭게 하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새로운 시대이기 때문에, 이 새로운 시대에는 율법에 반대되지는 않지만 자비와 사랑이 가득 찬 새로운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오신 자비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인사를 하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자넨 정말 말을 잘 하는구먼!” 하고 베드로가 감탄을 하며 말한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른단 말이야. 그저 ‘착하게 사시오. 선생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믿으시오.’ 하고만 말한단 말이야. 나는 선생님이 어떻게 내게 대해서 만족하실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어.”
“그렇지만 선생님은 자네에 대해 만족하고 계셔.” 하고 알패오의 야고보가 대답한다.
“진정으로 말하는건가, 그렇지 않으면 친절로 그렇게 말하는건가?”
“사실이 그렇다 말이야. 선생님이 어제도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래?! 그럼 나는 오늘 내가 장가든 날보다도 더 만족스러우네. 그렇지만 자네는 … 그렇게 말 잘 하는걸 어디서 배웠나?”
“선생님 어머니 무릎에서, 그리고 선생님 곁에서 배웠지. 얼마나 훌륭한 강의고! 얼마나 훌륭한 말이있는지! 어머님보다도 더 잘 말할 수 있는 분은 선생님밖에 없어. 그렇지만 선생님께 힘으로 인해서 부족한 것이 있으면 어머님은 상냥함으로 그것을 보태 주시지. … 그런데 그것이 속속들이 스며든단 말이야. … 어머님의 강의란! 향기나는 기름이 한 구석에 닿은 천을 본 적이 있나? 그 천은 기름만 천천히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향기까지도 빨아들여. 그리고 기름이 사라지게 되더라도 향기는 여전히 남아서 ‘내가 여기 있었다.’ 고 말한단 말이야. 어머님이 그러셔. 거칠은 천에다 생활로 인해서 빨아진 천인 우리 안에 어머니의 지혜와 은총이 스며들었고, 그분의 향기가 우리에게 남아있는거야.”
“그런데 선생님은 왜 어머님을 모셔 오지 않으셔? 모셔 오시겠다고 하셨는데 말이야! 그러면 우리가 더 착해지고, 덜 고집을 부리게 될텐데. … 적어도 나는 말이야. 그리고 저 사람들까지도 … 이따금씩 오는 저 독사 같은 사람들도 더 착해질텐데 말이야 …”
“그렇게 생각하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우리는 더 낫게 될 것이고 또 비천한 사람들도 더 나아질테지. 그렇지만 유력자들과 악인들은! … 아이고! 요나의 아들 시몬! 다른 사람들도 자네와 같이 올바른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말게! 기대가 어긋날걸세. … 저기 선생님이 오시네. 선생님께는 아무 말씀도 드리지 마세 ….”
예수께서는 부엌에서 나오시는데, 기름바른 빵껍질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예수님 곁에서 종종 걸음을 치는 어린 사내 아이의 손을 잡고 오신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넓은 보폭(步幅)을 친구의 짧은 다리에 맞추신다. 그리고 기쁘게 말씀하신다. “내 사람을 하나 만들었다. 아스라엘이라고 하는 이 네살 먹은 사람이 제자가 되어서 전도를 하고, 병든 어린이들을 고쳐주고, 12월에 포도넝쿨에 포도송이가 달리게 하는 법을 배우겠다고 말하고, 그 다음에는 산에 올라가서 모든 사람에게 ‘이리 오시오,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하고 말하고 싶다고 한다. 그렇지, 아스라엘아?”
꼬마는 웃고, 그렇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도 빵껍질을 조금씩 갉아 먹는다.
“넌 먹을 줄도 잘 모르는구나! 넌 메시아가 어떤 분이신지도 말할 줄 모르지.” 하고 토마가 놀리느라고 꼬마에게 말한다.
“나자렛의 예수님이야.”
“그럼 ‘메시아’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
“그건 … 그건 사람들이 착해지라고, 다들 착해지라고 보내서 온 사람이야.”
“그럼 착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너 같은 꼬마는 어떻게 하겠니?”
“난 예수님을 좋아하고 무엇이든지 할거야. 그리구 내가 예수님을 좋아하니까 예수님도 무엇이든지 할 거야. 아저씨두 그렇게 해, 그럼 착해질거야.”
“토마야, 이 교훈은 네게 주어진 것이다. 계명은 이렇다. ‘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모든 것을 하여라. 만일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나도 너를 사랑할 것이고, 사랑이 네 안에서 모든 것을 하겠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아스라엘아, 오너라. 전도하러 가자.” 예수께서 어린이를 데리고 계실 때는 어떻게나 기뻐하시는지 나는 모든 어린이를 예수께 데려가고 싶고, 어린이 모두에게 그분을 알리고 싶을 지경이다. 예수의 이름조차도 모르는 어린이들이 매우 많다.
예수께서는 베일을 쓴 여자 앞을 지나가실 참이다. 그런데 그 여자와 마주치시기 전에 어린이에게 말씀하신다. “저 여자에게 ‘평화가 아줌아와 함께 있기를.’ 하고 말해라.”
“왜?”
“저 여자는 네가 넘어질 때 그런 것처럼 ‘아야아야’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다. 그래서 저 여자는 우는 거다. 그렇지만 네가 그렇게 말하면 저 여자 아픈 것이 나을거다.”
“평화가 아줌마와 함께 있기를. 울지 말아. 메시아가 내게 그렇게 말했어. 아줌마가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면, 예수님도 아줌마를 많이 사랑하고 병을 고쳐 줄거야.”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지 않고 아스라엘을 끌고 가시는 동안 아스라엘이 이렇게 말한다. 아스라엘에게는 참으로 선교사의 자질이 있다. 어떤 때는 설교하는 데 좀 … 시의에 적절하지 않은 말을 하고 말하라는 것보다 더 많은 말을 하긴 하지만.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
‘거짓 증언을 하지 말아라.’ 하는 말이 성경에 있습니다.
거짓말장이보다 더 불쾌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거짓말장이는 가혹을 부정(不淨)에 합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중대한 문제에 거짓말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만, 거짓말장이는 잔인합니다. 그 사람은 혀로 남의 평판을 죽입니다. 그러므로 살인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나는 거짓말장이가 살인자보다도 더 나쁘다는 말까지 하겠습니다. 살인자는 육체만을 죽입니다. 그런데 거짓말장이는 한 사람의 좋은 명성과 추억을 죽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이중으로 살인자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가 중상하는 사람과 그 가족 전체의 명예를 한꺼번에 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는 맹세를 해서 다른 사람을 죽게 하는 사람의 경우에 대해서도 여러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사람의 머리 위에는 벌써 지옥의 숯불이 쌓여 있는 것입니다. 나는 다만 거짓말로 암시를 주고 죄없는 사람이 불이익이 되도록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사람에 대해서만 말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왜 그런 일을 합니까? 이유없는 증오로나,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가지고자 하는 욕심으로나, 또는 두려움으로 그렇게 합니다.
증오로. 사탄의 친구인 사람만이 증오로 움직입니다. 착한 사람은 어떤 동기로도 절대로 미워하지 않습니다. 누가 그를 업신여기거나 그에게 해를 끼치더라도 용서합니다. 그 사람은 결코 미워하지 않습니다. 증오는 타락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증언이고, 무죄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증언입니다. 그것은 증오가 선에 대한 악의 반항이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욕심으로. ‘저 사람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싶다. 나는 그 사람을 업신여기게 해야만 그 사람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한다.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아무려면 어때? 도둑질을 하는 것인가? 무슨 상관이 있어? 한 가족 전체를 파멸시키게 될지도 모른다고? 아무려면 어때? 교활한 거짓말장이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모든 질문에서 한 가지 질문, 즉 ‘그러다가 내 가면이 벗겨지면 어쩌나?’ 하는 질문을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리기를 원합니다. 이 질문을 자신에게 하지 않는 것은 교만과 탐욕에 이끌려서 눈을 감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위험을 보지 못합니다. 그는 또 술취한 사람과 같습니다. 그는 사탄의 술에 취해서, 하느님께서 사탄보다 더 강하시고, 중상을 당하는 사람들의 원수를 갚는 일을 맡으신다는 것을 곰곰히 생각하지 못합니다. 거짓말장이는 거짓말 자체인 사탄에게 몸을 바치고 어리석게도 그의 보호를 믿습니다.
두려움으로. 어떤 사람이 변명을 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일이 대단히 많습니다. 이것이 거짓말의 가장 흔한 형태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쁜 짓을 했는데, 그의 행동이 드러나고 나쁜 행동으로 인정될까봐 겁을 냅니다. 그래서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고 있는 존경을 이용하고 남용해서, 사실을 왜곡하고, 자기가 한 것을 정직한 면만을 인정받는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어쩌다가 다른 사람이 본의 아니게 우리의 나쁜 행동을 하나 목격했기 때문인데, 그렇게 해서 그의 증언에서 우리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가증스런 사람이 되게 해서, 그 사람이 말하는 경우에 아무도 그 사람의 말을 믿지 않게 하려고 그 사람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착하게 행동하시오! 착하게 행동하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절대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거짓말을 하면 여러분의 어깨에 스스로 멍에를 멘다는 것을 곰곰히 생각하지 못하십니까? 그 멍에는 사탄에 대한 예속과 거짓말이 반박되지 않을까 하는 계속적인 두려움으로 되어 있고, 여러 해가 지난 뒤에도 자가당착에 빠지는 일없이 그 거짓말을 둘러싸고 있던 사실들과 세밀한 사항들과 함께 그 거짓말을 기억해야 하는 필요성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형수(徒刑囚)가 하는 것과 같은 힘든 일입니다. 그것이 또 하늘에 가는 데 소용이 된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옥에 자리를 만들어 놓는 데에만 소용이 될 뿐입니다.
여러분은 솔직하십시오.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의 입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 사람이 가난할 것입니까? 세련되지 못한 사람이겠습니까? 알려지지 않을 것입니까? 지금 당장도 이름이 없는 사람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진실하기 때문에 항상 입니다. 그리고 솔직성은 금과 면류관보다도 더 왕다운 것이고, 옥좌보다도 더 군중들 위에 높이 올려 주며, 왕의 조신(朝臣)들보다도 더 많은 정직한 사람들인 조신을 거느립니다. 정직한 사람 곁에 있으면 안전하고 위안이 됩니다. 솔직하지 않은 사람의 우정은 걱정을 마련해 주고, 그 사람이 가까이 있기만 해도 거북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거짓말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이내 드러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항상 의심을 받는다는 것을 곰곰히 생각해봅니까? 이제부터는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어떻게 곧이 들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리고 그의 말을 믿는 것보다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결국 의심은 항상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저 사람이 또 거짓말을 하려는가?’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그렇지만 이런 것들에 거짓증언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고 말할 것입니다. 거짓말은 어느 것이든지 다 거짓 증언입니다. 법률상의 거짓 증언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어린 아이와 같이 순박하시오. 여러분의 일생의 어느 순간에나 진실하시오. 혹 어떤 험구가가 여러분에 대해 나쁘게 말하려고 하더라도 착한 사람 백명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소.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이오. 그 사람의 행실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소.’ 하고. 한 지혜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불공평한 사람은 입술에 사악(邪惡)을 담고 다니고… 그 비뚤어진 마음으로는 악한 구상을 하고 있으며, 언제나 불화의 씨를 뿌린다. … 주께서 미워하시는 것이 여섯 가지 있고, 일곱째 것은 몹시 싫어하신다. 즉 거만한 눈, 거짓말하는 혀, 죄없는 사람의 피를 흘리는 손, 불공평한 계획을 구상하는 마음, 악으로 급히 달려가는 발, 거짓말을 하는 거짓증인, 그리고 형제들 사이에 불화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다. … 혀의 죄로 인하여 파멸이 악인에게 다가온다. …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기만적인 증인이다. 진실을 말하는 입술은 변하는 일이 없다. 그러나 기만적인 혀를 놀리는 사람은 그 증언이 변한다. 불평하는 사람의 말은 소박한 것 같으나 내장을 파고 든다. 원수는 그가 배반을 꾸미고 있을 때 그의 말하는 투로 알아볼 수 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 그를 믿지 말아라. 그가 마음 속에 일곱 가지 악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매력 있는 외양 속에 그의 증오를 숨기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악의는 드러날 것이다. … 구덩이를 파는 사람은 그 구덩이에 빠질 것이고, 돌을 굴리는 사람 위에 그 돌이 떨어질 것이다.’
거짓말의 죄는 이 세상만큼이나 오래 되었고, 지혜로운 사람의 생각은 거짓말장이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 그런 것과 같이 그가 결정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항상 한가지 말만을 하시오. ‘예’라고 해야 할 때에는 항상 ‘예’하고 말하고, ‘아니오’하고 말해야 할 때에는 비록 권력자들과 폭군들 앞에서라도 ‘아니오’하고 말하시오. 그렇게 하면 하늘에 큰 공로를 쌓게 될 것입니다. 나는 분명히 말합니다. 그가 친절을 느끼는 사람에게로 본능적으로 가면서 친절 외에 다른 것을 찾지 않는 어린이의 솔직성과 같은 솔직성을 가지시오. 어린이는 자기가 가진 친절이 생각하게 하는 말을 하면서, 말을 너무 많이 한다든지 그로 인해서 꾸지람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따지지도 않습니다.
평안히들 가시오. 그리고 진리가 여러분의 벗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미새의 목소리를 듣는 새끼새처럼 머리를 쳐든 채 줄곧 예수의 발 앞에 앉아 있는 어린 아스라엘은 아주 다정스런 몸짓을 한다. 그 작은 얼굴을 예수의 무릎에 비비면서 말한다. “선생님은 착하고 또 나는 선생님을 좋아하니까, 나하고 선생님하고는 친구야. 이제는 나도 이렇게 말해.” 그러면서 넓은 방 전체에서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을 본 것 같은 몸짓을 한다. “다들 들어요.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나자렛의 예수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안단 말이야. 그 사람들은 야곱의 사다리로 … 천사들과 같이 높이, 높이, 아주 높이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게 되면 거기서 그냥 있는 거야.” 그러면서 이를 전부 드러내면서 기쁘게 웃는다.
예수께서는 꼬마를 쓰다듬어 주시고 사람들 가운데로 내려오신다. 예수께서는 꼬마를 엄마에게 데려다 주시며 “아주머니, 어린아이를 내게 주어서 고마웠습니다.”
“선생님을 귀찮게 했지요 ….”
“아닙니다. 이애는 내게 사랑을 주었습니다. 주님의 어린아이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애와 아주머니와 함께 계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