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아주 이른 아침에 역시 같은 문에서 제자 시몬과 유다와 만나시는 것이 보인다. 예수께서는 요한을 데리고 계신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들린다. “자, 너희들이 과히 힘들지 않으면, 나와 함께 유다를 두루 돌아 다니자. 특히 너 시몬이 너무 힘들지 않다면 말이다.”
“선생님, 왜요?”
“유다의 산길을 다니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리고 또 네게 해를 입힌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네게는 더 괴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걷는 일에 대해서는 다시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선생님이 제 병을 고쳐 주신 뒤로는 젊은이보다도 더 잘 견디어 내게 되었고, 어떤 피로도 괴롭게 여겨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특히 선생님을 위해서 할 때에는 더 그렇고, 지금은 선생님을 모시고 하니 더 그렇습니다. 제게 해를 끼친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말하면 고통스러운 원한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몬의 마음이 선생님께 바쳐진 뒤로는 그 마음 속에 그 사람들에 대한 아주 작은 혐오감도 없어졌습니다. 증오심도 병의 딱지가 떨어져 나가는 것과 동시에 떨어져 나갔습니다. 선생님이 병균에 파먹힌 제 육체를 고쳐 주시는 것으로 더 큰 기적을 행하셨는지, 또는 원한에 불타는 제 마음을 고쳐 주는 것으로 더 큰 기적을 행하셨는지 정말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후자가 더 큰 기적이이었다고 말씀드려도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의 상처를 고치는 것이 더 어려우니까요… 그런데 선생님은 단번에 제 정신의 병도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온 힘을 기울인다 해도 대번에 나을 수가 없고, 또 선생님의 거룩한 의지로 어떤 정신적인 체질을 없애지 않으시면, 이렇게 나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네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
“왜 모두에게 그렇게 해 주지 않으십니까?” 하고 유다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묻는다.
“유다,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하셔. 선생님께 왜 그렇게 말씀드려? 자네는 선생님을 가까이한 뒤로 달라졌다고 느끼지 않나? 나는 벌써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었는데, 선생님이 ‘오너라’하고 말씀하시는 순간부터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어.” 요한은 보통 끼어드는 일이 도무지 없고, 특히 선생님 앞에서 나서는 일은 절대로 없지만, 이번만은 잠자코 있을 수가 없다. 유다의 성을 가라앉히려는 듯이 부드럽고 다정스럽게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숨가쁘고 또 설득력있는 태도로 그에게 말한다. 그러다가 예수보다 먼저 말한 것을 깨닫고는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선생님, 용서하세요. 선생님 대신 말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저…저는 그저 유다가 선생님께 말대답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오냐, 요한아. 그러나 유다는 제자로서 나를 몹시 슬프게 하지 않았다. 그가 제자가 되었을 때 그의 사고 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그 때에는 나를 슬프게 할 것이다. 내가 슬퍼하는 오직 한 가지 일은 사람의 생각을 빗나가게하는 사탄으로 인하여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타락하였는가 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너희들 모두 이것을 알아두어라. 너희 모두가 사탄에 의하여 생각이 흐려졌다! 그러나 너희들이 하느님의 힘인 은총을 가지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 그러면 너희가 정의로 판단하기 위한 모든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저희 모두가 정의를 가지고 판단하게 됩니까?”
“아니다, 유다야.”
“그렇지만 선생님은 저희 제자들을 위해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모든 사람을 위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우선 너희들 위하여 말하는 것이고, 다음에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말하는 것이다. 때가 되면 스승은 일꾼들을 만들어서 온 세상에 보낼 것이다….”
“벌써 그렇게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금은 그저 너희들을 통해 ‘메시아가 오셨으니, 그분께 오시오’하고 말하게만 한다. 그러나 그 때에는 너희들이 내 이름을 전파할 수 있게 하고,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할 수도 있게 할 것이다…”
“아이고! 기적까지두요?”
“그렇다. 육체와 영혼에.”
“아아! 그러면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를 우러러볼까!” 이 생각에 유다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렇지만 그 때에는 우리가 선생님을 모시고 있지 못할거야… 나는 내 인간적인 힘으로 어떤 하느님다운 일을 하려면 늘 겁이 날거야.” 요한이 이렇게 말하며, 생각에 잠긴 듯하고 약간 서글픈 태도로 예수를 쳐다본다.
“요한, 선생님이 허락하신다면, 자네에게 내 생각을 말해 주고 싶네”하고 시몬이 말한다.
“네 생각을 요한에게 말해 주어라. 나는 너희들이 서로 조언을 해 주기를 바란다.”
“선생님은 그것이 조언이라는 것을 벌써 알고 계시는군요?”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말씀을 안하신다.
“그러면 요한, 자네에게 말하겠네만, 자네가 겁을 내서는 안되고, 우리도 겁을 내서는 안되네. 거룩하신 선생님의 지혜와 약속에 항상 의지하도록 하세. 선생님께서 ‘너희를 보내겠다’ 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선생님께와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즉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하느님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실 수가 있으리라는 뜻이야. 선생님께서 우리의 지적 빈곤, 정신적 빈곤을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선생님께 주신 능력의 광채로 감싸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니, 우리는 선생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리라는 것과 우리가 우리 힘으로가 아니라 당신의 자비로 그럴 만한 능력을 가지게 될라는 것을 확신해야 되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 행동에 교만과 인간적인 욕망을 섞지 않으면 틀림없이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질걸세. 아주 영적인 우리의 사명을 우리가 세속적인 요소로 망쳐버리면, 그 때에는 그리스도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선생님 편에서 무능하셔서가 아니라, 우리의 교만의 올가미로 선생님의 능력의 목을 조르겠기 때문일거야. 설명을 잘 했는지 모르겠네.”
“썩 잘 설명했네. 내 생각이 틀렸었네. 하지만 알겠나… 내 생각에는 말이야, 메시아가 하시는 일을 할 자격이 있을 만큼 그분의 사람이 된 메시아의 제자로서 찬미받기를 원하는 것은 결국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강력한 모습을 빛내겠다는 욕망이야. 그러한 제자를 두신 선생님께 찬사가 돌아간다. 내 말뜻은 이런 것이었네.”
“자네가 말한 것 전부가 틀리지는 않았네. 그러나…이보게 유다. 나는 박해를 받는 계급에서 왔네. 박해를 받는 것은… 그것은 메시아가 어떻다는 것,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었어. 사실이야. 우리가 메시아를 그분의 실제에 대해 정확한 견해를 가지고 기다렸더라면, 진리에 대한 모독이요 로마 법에 대한 반란인 오류에 빠지지는 않았을 걸세. 우리는 그리스도를 정복자로, 이스라엘의 해방자로, 새 마카베오로, 위대한 유다(마카베오)보다 더 위대한 인물로 보려고 했단 말이야… 다만 그것만을 원했단 말이야. 왜 그랬냐구? 그것은 하느님의 이해관계보다 우리의 이해관계, 즉 조국과 시민들의 이해관계에 더 관심을 가졌었기 때문이야. 아! 조국의 이익도 신성하지. 그러나 영원한 하늘에 비하면 그게 무엇이냐 말이야.
로마 경찰의 감시망을 벗어나려고, 또 특히 거짓친구들의 밀고에서 벗어나려고 도망쳐서 야수들의 굴에 숨어 그놈들과 잠자리와 음식을 같이 할 때, 또는 문둥병자가 되어서 숨어 있던 제 굴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무덤의 맛을 미리 보고 있을 때, 처음에는 박해로, 그 다음에는 격리로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냈고 – 얼마나 곰곰이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겸손하시고 인자하신 선생님의 모습을 영의 스승이시요 왕이신 선생님의 모습을 , 오 그리스도여,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를 먼지와 같은 왕국이나 진흙으로 된 신에게로 데려가지 않으시고 아버니께로 인도하시는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선생님… 아이고! 저로서는 선생님을 따르는 것이 쉬운 일입니다….-제가 옳다고 주장하는 대담성을 용서하십시오- 그것은 선생님을 뵈니 제가 생각했던 분과 꼭 같으시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을 알아뵙겠습니다. 즉시 선생님을 알아뵈었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안 것이 아니라, 제 영혼이 벌써 알았던 어떤 분을 알아뵙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너를 불렀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유다에게 하는 첫번째 여행에 너를 데리고 가는 것이다. 나는 네가 나를 끝까지 전부 알아보기를 원한다. …그리고 아직 나이가 어려서 철저한 묵상으로 진실에 접근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도 그들의 스승이 어떻게 이 시간에 이르렀는지 알기를 원한다. …너희들도 차차 깨닫게 될 것이다. 다윗의 탑의 근처에 왔구나, 동쪽 문이 가까이에 있다.”
“그리로 나갑니까?”
“그렇다, 유다야. 우선 베들레헴에 간다. 내가 태어난 곳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 줄 수 있게… 너희들이 그곳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이것도 메시아와 성서에 대한 지식의 일부이다. 너희들은 물건들에 씌어 있는 예언들을 발견할 것이다. 그 예언들은 예언의 목소리가 아니라 역사의 목소리로 너희들에게 말할 것이다. 헤로데의 궁전을 빙 돌아서 가자…”
“악의가 가득하고 음란한 늙은 여우.”
“판단하지 말아라. 판단하는 것은 하느님의 일이다. 정원을 건너지르는 저 오솔길로 해서 가자. 해가 쨍쨍 내리쬐는 동안에는 어떤 인심좋은 집 근처 나무 그늘에서 쉬도록 하자. 그리고 나서 길을 계속하자.”

-환상이 여기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