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께서 말씀하신다.

  “오늘은 성목요일 전날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환상이 당치 않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네 고통은 네 마음 속에 있고, 즐거운 환상이 나타나더라도 마음 속에는 그대로 있다. 그것은 불꽃에서 퍼지는 온기와 같은 것인데, 그것은 여전히 불기운이기는 하지만 이미 불은 아니다. 불은 불꽃이지, 불꽃이 그 둘레로 퍼뜨리는 미지근한 기운이 아니다. 진복을 주거나 깨끗하게 하는 어떤 환상도 네 마음에서 그 고통을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그 고통을 네 생명 바로 그것보다도 더 귀중한 것으로 여겨라. 사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하기는 내 환상이 그 평화로운 가운데에서 이 주간의 기념행사가 잘 조화된다.

  그러나 요셉도 그의 수난을 겪었다. 그리고 그 수난은 예루살렘에서 내 상태를 알아차렸을 때 시작되었고, 예수와 내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여러 날 계속되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그의 수난이 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순전히 내 남편 요셉의 성덕으로 인하여 그 고통이 하도 의젓한 비밀의 형태로 유지되어 많은 세월을 두고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아! 우리의 첫번째 수난! 누가 그 수난의 내적이고 말없는 강도를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늘이 아직 이 신비를 요셉에게 알려 주지 않으므로 내 청을 들어 주지 않으셨다는 것을 확인하였을 때의 내 고통을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요셉이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요셉이 보통 때 모양으로 그저 경의만 가지고 대하는 것을 보고 알았었다. 만일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배고 있다는 것을 요셉이 알았더라면 그는 내 태중에 계신 그 말씀을 하느님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숭배의 행위로 흠숭하였을 것이고, 그가 틀림없이 그 숭배의 행위를 하였을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것을 받기를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분을 위하여, 마치 계약의 궤가 율법의 십계명판과 만나의 그릇을 간직하고 있는 것과 같이 내가 간직하고 있던 그분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내가 주님께 헛되이 바랐었다고 설득하며 나를 짓누르려고 애쓰는 낙망과 내가 얼마나 싸웠는지를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아아! 나는 그것이 사탄의 분노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의심이 내 어깨를 움켜잡고 그 촉수를 뻗어 내 영혼을 사로잡고 그의 기도를 중단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몹시 위험하고 정신에 치명적인 의심이 말이다. 치명적이라고 한 것은 그것이 ‘실망’이라는 병, 그의 영혼이 죽고 하느님을 잃는 것을 보지 않으려면 힘을 다하여 저항해야 하는 병의 첫번째 공격이기 때문이다.
  요셉의 고통, 그의 생각, 그의 애정에 있어서의 혼란을 누가 정확하고 진실되게 말할 수 있겠느냐? 커다란 돌풍에 휘말린 작은 배와 같이 그는 서로 대립된 생각, 서로서로 더 괴롭고 더 가혹한 여러 가지 깊은 상념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 있었다. 남보기에는 아내에게 배반당한 남자였다. 그는 그의 좋은 평판과 세상 사람들의 존경이 아내로 인하여 동시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었고, 벌써 자기가 고장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동정의 대상이 된 것을 보고 있었다. 그는 내게 대하여 가지고 있던 사랑과 존경이 명백한 사실 앞에서 죽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여기서 요셉의 성덕은 내 성덕보다도 한층 더 빛난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아내로서의 내 사랑으로 증언한다. 그것은 지혜롭고 신중하고, 참을성 있는 착한 이 사람, 내 요셉을 너희들이 사랑하기를 내가 원하기 때문이다. 요셉은 구속의 신비를 위하여 그의 고통과 그 자신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희생에 의하여, 그의 큰 성덕으로 구세주를 구함으로써 구속의 신비와 긴밀히 연결되어.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만일 그가 덜 거룩하였더라면, 인간적으로 행동하여 나를 간음한 여자로 고발해서 돌로 쳐죽이게 하고, 나와 더불어 내 죄로 얻은 자식도 죽게 하였을 것이다. 만일 그가 덜 거룩했더라면, 하느님께서 그와 같은 시련 속에서 그를 인도하기 위한 빛을 주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거룩한 사람이었다. 지극히 깨끗한 그의 정신은 하느님 안에서 살고 있었다. 그의 안에 있는 사랑은 열렬하고 강하였다. 그리고 그의 사랑으로 요셉은 너희들에게 구세주를 구해 주었다. 장로들에게 나를 고발하지 않는 것으로도 그랬고, 재빠른 순종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이집트로 데려가는 것으로 그랬다. 요셉의 수난과 그 첫번째 수난의 날들이 별로 길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수난의 심함으로 인하여 무서운 나날이었다. 내가 수난을 겪은 것은 요셉의 괴로움을 깨달으면서도 말하지 말아라 하고 내게 말씀하신 하느님의 명령에 충실하기 위하여 그 괴로움을 그에게서 도무지 없앨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나자렛에 도착하여 그가 간결한 인사를 한 뒤에 몸을 구부리고, 말하자면 얼마 안되는 사이에 늙어서 나를 떠나가는 것을 보았을 때, 그가 늘 하던 것처럼 저녁 때 내 집에 오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는, 내 자식들아, 정말이지 눈물에 젖은 내 마음이 격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혼자서 내 집에 틀어박혀, 모든 것이 천사의 알림과 성자의 강생을 내게 상기시키고, 모든 것이 내 마음 속에 티없는 동정으로 나와 결합한 요셉의 기억을 되살리는 집에 혼자 틀어박혀, 낙담과 사탄의 암시에 저항하고 바라고, 바라고, 또 바라야 하였다. 그리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하였다. 그리고 요셉의 의심과 정당하게 분개한 의인으로서의 격분을 용서해야 하였다.
  내 자식들아,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개입하시는 은혜를 얻으려면 바라고 기도하고 용서해야 한다. 너희들도 너희 수난을 겪어야 한다. 너희들의 죄가 그것을 가져다주었다. 그 수난을 어떻게 이겨내고 기쁨으로 바꾸는지를 너희에게 가르쳐 주겠다. 한없이 바라고, 의심하지 말고 기도하며 너희가 용서받기 위하여 용서하여라. 내 아들들아, 하느님의 용서는 너희들이 갈망하는 평화일 것이다.

  지금 당장은, 부활의 개선 후에는 침묵이 올 것이라는 것 말고는 다른 말을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너희들의 구속자가 견디어내는 것을 동정하고 그의 한탄을 귀담아 들으며 그의 상처와 눈물을 세어라. 눈물 한방울 한방울을 너희를 위하여 흘렸고, 그의 상처들은 너희를 위하여 입은 것이다. 다른 환상은 어떤 것이든 그가 너희를 위하여 완수한 구속을 상기시키는 환상 앞에서는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