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가 말씀하신다.
  “내가 있는 것으로 인해서 세례자가 거룩하게 되었지만, 엘리사벳에게서는 하와에게서 오는 선고가 없어지지 않았었다. ‘너는 아기를 낳을 때에 몹시 고생하리라’고 영원한 분이 말씀하셨었다. 티 없고 인간과의 결합이 없는 나만이 분만의 고통이 면제되었다. 슬픔과 고통은 죄의 결과이다. 죄없는 나였지만, 그래도 나는 공동 구속자였기 때문에 고통과 슬픔은 겪어야 했다. 그러나 분만의 격심한 고통은 없었다. 나는 그 고통은 겪지 않았다.
  내 딸아, 그러나 정말이지 침대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침대에서, 즉 내 아들이 달려 죽는 십자가 아래 내 십자가라는 침대에서 겪은 영적인 모성의 고난의 산고와 같은 산고는 일찍이 없었고 또 절대로 없을 것이다. 어떤 어머니가 이런 모양으로 아이를 낳아야 하고, 또 어떤 어머니가 죽어가는 자기 아들의 숨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찢어지는 듯한 마음의 고통을 이길 수 있겠느냐? 그리고 자기 아들을 죽이는 사람들에게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너희들의 어머니인 내게로 오너라’하고 말해야 하는 소름끼치는 일을 어떤 어머니가 이겨낼 수 있겠으며, 아들을 죽이는 사람들에게 너희를 사랑하는 이 어머니에게 오너라 하고 말해야 하는 고통을 어떤 어머니가 겪을 수 있겠느냐? 하늘이 일찍이 본 것 중에서 가장 숭고한 사랑에서, 즉 하느님과 동정녀와의 사랑과 결합에서, 육체가 되고 한 여인의 태를 하느님의 장막을 만든 불의 입맞춤과 빛의 타오름으로부터 태어난 그의 아들을 죽이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어머니가 되려면 얼마나 고통을 겪어야 해요!’ 하고 엘리사벳이 말했었다. 대단히 큰 고통이다. 그러나 내 고통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마리아의 가슴에 손을 얹게 해줘요.’ 아아! 너희들이 고통 중에 항상 이것을 내게 청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영원히 예수를 안고 있는 여자이다. 예수는 작년에 네가 보았듯이 성광에 성체가 들어 있는 것과 같이 내 품에 머물러 있다. 내게 오는 사람은 예수를 만난다. 내게 기대는 사람은 예수를 만진다. 내게 말을 하는 사람은 예수에게 말한다. 나는 예수의 옷이다. 예수는 내 영혼이다. 내 태중에서 커가고 있던 아홉 달 동안에 나와 결합하여 있었던 것보다도 한층 더 그의 엄마인 나와 결합하여 있다. 그래서 내게로 와서 머리를 내 가슴에 얹은 사람에게는 어떤 고통이든지 가라앉고, 모든 바람이 피어나며, 어떤 은총도 다 흘러내린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한다. 이것을 상기시켜라. 하늘나라에 있으면서 하느님의 빛 속에서 사는 지복을 누리면서도 나는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는 내 자녀들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기도한다.
  하늘나라는 사랑하기 때문에 온 하늘나라 전체가 기도한다. 하늘나라는 살아 있는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은 너희들을 불쌍히 여긴다. 그러나 나 밖에는 아무도 없다 해도, 내가 너희 모두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는 만큼 그것으로도 벌써 하느님께 바라는 사람의 필요에는 충분한 기도가 될 것이다. 나는 거룩한 사람, 악한 사람 모두를 위하여 기도한다. 거룩한 사람들에게는 기쁨을 주기 위하여. 악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구하는 뉘우침을 주기 위하여.
  내 고통의 자식들아, 오너라, 와. 너희들을 용서하려고 십자가 아래서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다.